아이의 사회생활

by 로엘라

하원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 앞에 선 연우가 현관 비밀번호를 엄마가 눌렀다고 심술이 났다. (버튼은 못 눌러도 자기 손가락이 한 번이라도 닿아야 한다.) 유모차에 앉아 삐죽거리더니 이번엔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바닥에 주저앉아 기어코 울음을 터뜨린다. 엘리베이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밖으로 나가자며 더 크게 운다. 옆 집에 실례가 될까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21개월 연우 인생에서 밖으로 나가자고 저리도 서럽게 우는 건 오늘로써 두 번째다. 밖으로 나온 연우가 눈가에 눈물방울을 매단 채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렇지, 원하는 게 따로 있지 너.


신난 발걸음으로 엄마 손을 잡아끌며 엄마를 재촉한다. 현관 비밀번호는 트집을 잡기 위한 핑계고 동네 슈퍼에 가기 위한 빌드업이었던 거다.


어제도 그랬다. 어제는 어찌어찌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는데 간식을 달라고 울길래 ‘옷 벗고 엄마에게 오면 준다’고 했더니 그 말이 뭐 그리 서러운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하필이면 현관 앞에 자리 잡고 우는 바람에 문 앞에 놓인 자기 신발을 보고 밖으로 나가자고 노선을 바꿔버린다. 금방 진정하겠지 싶어 기다리는데 40분이 다되도록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엄마가 말만 하면 악을 쓰고 울다가 결국 토까지 해버렸다.


결국 졌다. 퉁퉁 부은 눈과 옷에 묻은 토 자국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아직도 진정하지 못해 쉰 목소리로 흐느끼는 연우를 보니 ‘아이고 아가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40분간 우는 아이를 지켜보며 수만 가지 감정이 밀려온다. 그중 가장 오래 남은 건 ‘이렇게 오래 울리지 말걸’ 하는 후회다.


엄마가 회사에 있는 길고 긴 시간만큼 연우는 어린이집에 있다. 집으로 돌아와 간식 먹고 씻으면 집에 있는 장난감은 만질 새도 없다. 침대에 곧장 누워 잘 준비를 한다. 하원 후 깨어있는 그 짧은 시간을 우는데 다 써버렸으니 연우만큼이나 엄마도 속상하고 미안해진다.


전리품으로 간식을 얻은 연우는 언제 울었냐는 듯 신나게 집으로 돌아와 엄마 말도 잘 듣는다. 우느라 체력을 다 쓴 탓에 별다른 저항도 없이 평소보다 금세 잠들었다.


여기까지가 어제 이야기. 이대로 아름다운 결말이면 좋겠지만, 오늘 또 저렇게 눈물을 무기 삼아 엄마를 슈퍼로 이끌고 있으니 내 마음은 또다시 착잡하다. 이대로 버릇을 잘못 들이는 건 아닐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서서 걷는 연우를 보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이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뭘 어찌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어린이집에선 안 그런다는데 왜 집에서만.. 싶다가 불현듯 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회사 신입 시절,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퇴근하면 집에선 그야말로 폭군이 따로 없었다. 엄마가 말만 걸어도 짜증 내며 방 문을 쾅 닫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짜증 섞인 저 가짜 울음이 유독 하원 후에 심하다는 걸 이제야 눈치채버렸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취업 소식에 적응 기간이랄 것도 없이 하루아침에 낯선 어린이집에 뚝 떨어진 아이다. 지금까지 등원 거부 한번 없이 아침마다 엄마에게 손 흔들어 주는 아이. 연장반까지 꼬박 하면서도 키즈노트 사진첩에 올라온 푸른 새싹반 연우는 항상 웃고 있다. 집에서보다 더 신나게. 깊은 보조개 뽐내며 눈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얼굴 전체를 구겨가며 웃어준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엄마한테 온갖 트집을 잡으며 짜증을 냈구나.


너도 하루 종일 사회생활 하느라 힘들었겠다.


아이의 사회생활을 생각하니 어쩐지 앞서 걷는 저 뒷모습이 오늘따라 짠하다. 그래, 먹고 싶은 간식 사러 가자. 하루 이틀 운다고 이 아이가 갑자기 금쪽이가 되는 건 아니겠지.




지난 달에 쓴 글입니다. 사회생활에 열심인 연우가 지낝 엔 기존 어린이집 수료식을 하고 다음달부터 단지 내 가까운 어린이집으로 옮겨요. 적응 잘해야 할텐데 그곳에선 또 어떤 생활을 할지 걱정반 기대반이예요 :)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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