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음과 글모를 시작했다
침대에 엉킨 몸을 일으키며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를 엉금엉금 기어 나오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오늘은 열음의 글이었다. 하얗고 말랑하고 깊은 나를 언급하는 글이었다. 하얗고 말랑하고 깊은 거 다 너무 좋은데, 깊다는 게 제일 좋다.
열음은 나를 무턱대고 ‘말랑’이라고 불러버린다. 나의 풀네임은 오말초여서 보통 ‘말초’라고 부르는데, 그냥 ‘말랑님’ 하고 불러버린다. 그런 무턱댐이 너무 열음 같아서 좋다. ‘해 말아에서 해를 맡고 있는 사람’다운 면모를 지녔다. 나는 한 발자국 다가갔는데 그의 손은 나를 잡고 다섯 발자국은 질질 끌고 가는 느낌이다. 그 끌려감이 이렇게 유쾌할 수 없다.
오늘 아침 열음의 글처럼 앞으로 우리가 함께 나누어 읽을 글도 그정도였으면 좋겠다. 파바밧! 희망이 용솟음 치진 않더라도 그저 서로가 엉금엉금 기어갈 힘을 주면 좋겠다. 그러다 엉금엉금이 모이면 어느 날은 쏜쌀같이 재주넘기를 하는 날도 오겠지. 티끌 모아 태산, 아니 엉금 모아 재주넘기다. (우리의 글모 이름은 재주넘기다)
*열음과 글쓰기 모임을 하기로 한 다음날 썼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