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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말초 Jan 18. 2024

슬픔 아는 빛

재주넘기 첫 번째 주제: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헤엄치지 않는다. 그저 치는 파도를 바라본다. 바다 바깥에 있는 동안 쌓은 모래성이 너무 많다. 큰 파도가 모래성을 헤집는다. 형체도 없이 사라진 모래성과 발끝에 닿은 파도를 바라보며 속수무책이 된다. 이것이 슬픔과 나의 관계다. 바다 바깥에서도 바다를 쓸 수 있다. 파도의 움직임과 바다의 빛깔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물이 어떤 소리로 일렁이는지, 어느 정도로 차가운지, 얼마나 짠맛을 내는지는 쓸 수 없다. 슬픔 바깥에서도 슬픔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소리로 일렁이는지, 어느 정도로 차가운지, 얼마나 짠맛을 내는지는 쓸 수 없다.


슬픔 바깥에서 슬프게 하는 것을 떠올린다. 편의점 음식을 대충 삼켜버릴 때, 요가 동작 하나도 버거운 좁은 방에 있을 때, 역 앞 노숙인을 지날 때, 서울 도서관에 갔다가 이태원 참사 추모식을 봤을 때, 친구 생일 케이크를 찾으러 간 곳이 하필 서이초등학교 사거리였을 때,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마주할 때, 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할 때, 해야 하지 않을 말을 할 때, 내가 나일 때.


“슬픈 말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웃음 짓게 돼” 친구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자연스레 힘이 들어가는 입가와 지어지는 웃음, 뻐근해지는 마음, 에둘러 하는 말. 슬픔 뒤에 온전한 울음이 이어지는 날은 많지 않다. 슬픔은 혼자 오지 않고, 슬픔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어떤 날의 일기에는 ‘슬프게 화가 난다’라고 적혀있다. 너무 쨍한 해처럼 너무 선명한 슬픔에서는 눈을 거둔다. 슬픔은 내 눈치를 보다가 알아서 웅숭그린다.


슬픔에서 눈을 거둔 사람에게는 슬픔 아는 빛이 없다. 바다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에게 물기가 없는 것처럼. 물기 없는 뽀송함은 곧 메마름이 된다. 슬픔 아는 빛은 말한다. 저기에도 슬픔이 있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에서, ‘너를’ 슬프게 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알게 된다. 너의 슬픔이 곧 나의 슬픔이구나. 결국 우리의 슬픔이구나.


언젠가는 나도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물기를 잔뜩 묻히고 나와 누군가의 옆에서 같이 모래성을 쌓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슬픔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슬픔 아는 빛을 묻히고, 나의 유약함과 무름과 슬픔에서 벗어나 우리의 유약함과 무름과 슬픔을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어설프게 훌쩍이지 않아야 한다. 견디지 않아야 한다. 견고한 모래성이 흩어지면 제때 코가 벌게지도록 울어버려야 한다.


울어서 벌게진 얼굴만큼 예쁜 얼굴이 또 어디 있을까. 그만큼 찡한 색깔이 또 어디 있을까. 울고 싶은 기분이 들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울어 버리는 편이 좋다. 있는 그대로의 슬픔을 즐기려면 꼭 '지금' 울어 버려야만 한다. _쉬운천국, 유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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