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산책 중 마주친 글자. 치유의 길, 회복의 언덕. 조명이 바닥을 비추니 땅 위에 글씨가 새겨진다. 찍으려니 얄밉게도 금세 다른 글자로 지나가버린다. 건너려는 순간 빨갛게 바뀌어 버리는 신호등처럼.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 사람처럼. 궁금한 게 없는 것만큼 슬픈 게 있을까. 질문이 없으면 답할 수 없다. 꼭 정답이 아니래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괜찮다고 미리 달래놓았으니 괜찮아야만 했다. 잠시 걸을까. 살짝 울까. 하다가도 스스로 빈정 거린다. 세컨드 윈드는 오지도 않았어. 이제야 슬슬 바람이 불어올까 말까란 말이야. 울음을 고민하는 마음도 여유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여유가 없으면 그냥 흐르겠지. 흐를까 말까 하는 순간도 없이 흘러버리겠지. 빈정거리고 아파하고, 다시 애달프다. 시선을 돌릴 곳을 찾는다.
지혜 님이 보내온 뉴욕 통신을 읽는다. 이번 편이 지금까지 받은 모든 편지 중 제일 소름 돋고, 제일 좋았다. <우정 도둑>을 처음 봤을 때처럼. 책이 아닌 메일에서 마주한 작가님의 글은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사랑스럽기만 하진 않았다. 예쁘지만은 않은 글은 마음 언저리에 낯섦을 남긴다.
깨달았다. 내 글은 나를 반만 담고 있었다는걸. 책에서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면은 물어 뜯기기 좋은 거짓이 될 수 있다. 나는 한 편으로는 연기를 했었다. 행복한 척이 아니라 안 섹시한 척... 재밌고 과격하고 야한 모습을 생략하는 게 문학이라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데미안>에는 그런 건 안 나오니까...... 문학적이지 않은 내가 문학적으로 보이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노력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젠 모든 걸 드러내야 한다. 이십 대스럽지 않은 진짜 시련 또한 사랑스럽게 이겨내는 사람이라는 걸 (이번에는) 사랑스럽지 않게 써야 한다. 나는 뉴욕과 글이라는 인생의 유일한 옵션을 백지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욕통신, 유지혜
문학스럽게, 나를 반만 담아내는 글은 더 이상 내게 쓸 힘을 주지 않는다. 본색을 드러내기 위해 다섯 권의 책이 필요했던 작가님처럼, 나도 겹겹의 시간이 필요했다.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목마른 나에게 당신의 글이 흐른다. 따라 걸으려 발맞추다 결국 다른 걸음으로 짓게 되는 나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글은 그저 본색으로 남아있길. 바꿀 수 없는 피처럼. 나의 집, 글, 본색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 답장을 쓰고 싶어진다. 기꺼이 자신을 번복하고 벗겨 먹는 사람에게는 나의 소심小心도 내보일 수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작가님, 저의 답장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작가님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작가님에게 제 영혼이 있어요'라고 진한 글씨로 남길 때, 저 멀리서 아주 연하게 '나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외치다가 오늘 처음 전해요. 좋은 만큼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일까요? 사실 전 뉴욕에 별 관심 없어요. 그저 작가님 이야기가 읽고 싶었어요. 이젠 작가님을 보면 뉴욕이 떠오르고 뉴욕을 보면 작가님이 떠오르네요. 계속 망설이다 5화를 보고 용기를 냈어요. 기꺼이 자기를 번복하고, 벗겨 먹는 사람에게 언제 편지할 수 있을까 하면서요.
로 시작하는 편지를 적어본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사랑스럽지 않게 쓰는 글을 읽으며 잠드는 요즘이다. 겹겹의 시간 중 한 겹이 쌓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