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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말초 Apr 27. 2024

공감능력

재주넘기 열 번째 주제: 공감능력

두발자전거를 처음 타던 날을 기억한다. 열한 살 때였다. 자전거의 뒷부분을 잡아주던 손이 사라진 것도 모른 채 몇 번이나 페달을 밟았다. 뒤를 돌아보니 H는 멀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부재를 인지하는 순간 넘어졌다.


스키를 처음 타던 날을 기억한다. 스물다섯 살 때였다. H는 가고픈 방향의 다리에 힘을 주라는 말과 멈출 때는 A자를 그리라는 말을 해주었다. H가 보여주는 몸짓을 자꾸 따라 했다. 줄곧 넘어졌고, 혼자 일어나는 법을 익혀야 했다. 넘어질 때마다 H가 알려준, 일어나기 수월한 자세를 잡아 곧잘 일어나게 되었다. 일어날 뿐만 아니라 매끄럽게 타게 됐을 때는 앞서가는 H를 자꾸만 불렀다. “나 좀 봐! 나 좀 봐!”


나의 자전거 스승이자 스키 스승은 ‘보는 사람’이다. 읽는 사람이 쓰게 되듯 보는 사람은 담게 된다. 그가 담는 방식은 사진과 영상이다. S와 N과 함께 H의 사진전에 갔다. 그곳에는 H의 20대가 전부 담겨있었다. 그 애의 20대를 전부 아는 우리는 전부 알아지는 마음으로 사진 앞에 머물렀다. 언제나 그랬듯 H는 투명하게 울고 있었다. H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잘 울어버리는 사람이다. 그의 눈물은 또르르. 가 아니라 후드득. 에 가깝다.


투명한 울음과 벌게진 코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대화를 했다.

“우리가 동기화되어 있는 것 같아”

동기화라는 말 앞에서는 공감조차 얄팍해졌다. 공감 뒤에 붙는 능력이라는 말도 무색했다.


사랑이 무엇이냐는 말에 고민하다 ‘공감’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내뱉고도 스스로 의아했다. 어떤 말이나 감정이 불쑥 떠오를 때면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둔 문장을 생각한다.

심연의 심연의 심연 / 기저의 기저의 기저

어쩌면 가장 밑바닥에 있는 마음. 가장 내 것인 마음이 아닐까 하고. 똑같은 질문에 이제는 동기화라고 답할 수도 있겠다.


자주 동기화되는 얼굴들을 떠올린다. 당신과 나의 피부가 닿아있든, 한 번도 닿은 적이 없든. 마음은 내내 닿아있는 얼굴들.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웃고 같은 것을 보고 글썽인다. 같은 일에 화를 내고 같은 일에 골똘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사용하지 않는 말이 같다.


타인의 슬픔을 슬픔으로 타인의 기쁨을 기쁨으로 느끼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된다면 그건 영혼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일이랬다. _ 일간 이슬아


H의 사진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영혼은 내게 되돌아왔다. 친구들은 영혼이 나에게 돌아오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나는 아마도 끊임없이 나의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배우며 살겠지. 열한 살의 자전거와 스물다섯의 스키처럼. 멈추는 법과 방향을 찾는 법과 일어서는 법을 배운 그날처럼. 그들이 보여주는 몸짓을 자꾸 따라 할 것이다. 그러다 소리칠 것이다.

“나 좀 봐! 나 좀 봐!”


나, 너희가 알려준 대로 산등성이를 잘 넘어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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