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넘기 아홉 번째 주제: 내가 사랑하는 것들
안경을 자주 쓰다 보면 렌즈를 끼고 있을 때도, 나도 모르게 안경을 올리는 시늉을 한다. 허공에서 맴도는 중지를 내리며 ‘습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이들이 있다. 습관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반면 나의 습관 목록에는 다리 떨기 와 손가락뼈 소리 내기 정도가 있을 뿐 ‘사랑’이라는 항목은 없다. 애당초 사랑과 습관은 동떨어진 말 같다. 그런데도 두 단어를 동시에 꺼내는 마음은 습관처럼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을 적으려는데 사랑받은 기억만을 떠올린다. 이를테면 아침밥. 요즘은 정말 아침밥이 극진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잠에서 덜 깬 몸을 일으켜 내어 주는 아침밥만큼 눈에 보이는 사랑이 있을까. 소박하지만 정갈한 아침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동한다. 약 20년간 아침을 잘 챙겨 먹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 사실 하나 때문에 아침밥을 먹 고 싶어 진다.
“저는 대신 죽어줄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가수 헤이즈가 한 예능에서 했던 인터뷰를 생각한다. 그녀는 ‘너무 과격한 표현인가?’ 하며 민망한 듯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당시 그 표현을 들으며
아! 맞지! 사랑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의 정의는 머리로만 아는 사실이다. 언제나 가정일 뿐인 것. ‘죽을 만큼’ 사랑해. 외치지만 인생에 죽음은 한 번 뿐이기에 정말 그만큼인지 나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고백은 가능하다. ‘아침밥 차려 줄 만큼’ 사랑해.
다시 밤이 없겠고, 햇빛도 쓸데없으리
밤이 유독 길던 날들을 보내며 이 찬양을 들었다. 밤이 그치길 바라는 마음으로. 햇빛조차 쓸데없을 만큼 환한 빛이 가득 차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다가 문득 나 말고 당신에게도 밤이 없기를 바랐다.
사랑은 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인가?
아니.
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음’은 늘 우리를 착각하게 한다. ‘너 참 사랑이 많구나’ 백날 천 날 마음을 품지만, 당신의 삶은 여전히 어둠으로 그늘진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이토록 바라는데. 왜지?
바라기만 해서.
밤이 없어지려면 호롱불이라도 들고 가야지. 호롱불도 없으면 해 뜰 때까지 같이 있어 줘야지. 밤이 오면 꼭 같이 있어 주는 것. 사랑이다. 네가 되어서 아무도 없는 밤을 대신 세어주고 아침만 남겨주고 싶다던 노래가 떠오른다.
먼 기억 속에서 또 하나의 사랑을 발굴한다. 사랑은 졸린 목소리. 어릴 때 자기 전에 항상 귀에 맴돌던 목소리. 엄마는 매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고, 매일 같은 이야기가, 매일 재밌었다. 늦게까지 가게 일을 마치고 온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늘어지고 어눌해지는 졸린 목소리였다.
아침밥을 내어주고, 어둠을 함께 보내고,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이것을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 행하고 있을까. 이 행함 없이도 감히 ‘사랑하는 것들’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받은 사랑을 헤아릴수록 사랑을 선뜻 이야기하기 어려워진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타인이 준 사랑. 그 모습을 잘 사랑하고 잘 닮아서 나도 습관처럼, 안경을 올리듯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고 싶다. 부엌에서 무수히 본 뒷모습, 아침을 차려주는 뒷모습을 가지게 될 날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