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가 되고 새롭게 열린 현대시 수업에서 너를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과제는 돌아가면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시를 발표하고, 그 시의 화자를 바꾸어 다시 쓰는 과제였다. 과제를 제출한 후 수업시간에 시를 발표하고, 다른 학우들이 그 시를 비평하는 식으로 수업은 이루어졌다.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건성으로 듣다가, 마지막으로 혜지가 발표를 시작했을 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쩐 일인지 모두가 너의 발표에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양안다’
혜지는 자신이 소개하고자 하는 시를 스크린에 띄우고는 시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너에게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어.”
그 문장을 뱉으며 그 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착각이었을까?
“해변의 성당은 허물어지고 신도들은 날마다 죄를 짓고 있지. 두 손을 모으려고, 신을 찾아 더듬거리려고, 맞아 부풀어 오르는 밤이야.”
나는 네가 조금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해도 견디기 힘들 때가 있어. 너는 이런 날, 이해할까.”
그 말을 하고 너는 다시 한번 나를 쳐다봤다.
그때 나는 너의 시선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인간은 대단해, 없던 일을 존재하게 만드니. 입 밖으로 감탄사만 쏟아져 나와서 있는 힘껏 박수만 쳤어.”
그 뒤로도 긴 시를 읊어 내리는 그녀의 모습이 이어졌다. 이윽고 그녀가 자신이 쓴 시와 사진 하나를 화면에 띄우고는 가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저는 이 시에서 신도들이 죄를 지으며 신을 더듬거린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신도들과 화자를 바라보는 신의 관점에서 이 시를 다시 써 보았습니다. 제목은 조개, 입니다.”
넓은 모래사장 속에 있는 하얀 조개 사진이 모니터에 띄어져 있었다. 그녀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짧은 시를 읽어나갔다.
“앙다물어라 조개처럼 입을. 그들은 네 안에 진주를 품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할 테니. 고개를 들지 말고 계속해서 숙여 바닥에 네 입술이 닿게 하라. 그들의 이해는 오해에 불과할지니.”
*
발표가 끝나고, 그녀는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학우들은 그녀가 새로 창작한 시가 원래 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다시 쓴 시의 문체가 지나치게 교조적이어서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가 마음에 들었다.
“양안다의 본 시는 해변의 성당이 배경이 되고 있고 혜지 학우님의 시는 조개를 제재로 하고 있어요. 저는 이 두 지점이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도를 바라보는 신의 관점으로 썼다고 생각하면 문체가 교조적인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요. 충분히 시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교수님은 나의 비평이 좋다고 말했고, 그녀 또한 혜지의 시가 장점과 단점을 뚜렷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나의 발언이 객관적인 비평이라고 여겼으나, 나는 사실 혜지를 변호하고 싶었다.
그 비평 속에 담긴 주관을 오직 혜지만 알고 있었던 건지, 그녀는 수업이 끝난 후 내게 말을 걸었다.
“수진아.”
“내 이름, 알고 있구나.”
“당연하지.”
“나야 뭐, 발표도 잘 안 하고. 과방에도 자주는 안 가니까.”
“나도 과 생활은 잘 안 하는 걸.”
그런 애가 과 CC를 세 번씩이나 하니,라고 무심코 생각했다가 이내 내 생각에 놀랐다. 그런 시선으로 너를 바라보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너를 잘 알지도 못하고 떠드는 그 사람들과는 다른데.
소문으로 전해 듣던 너와 진짜 너는 아주 달랐다.
너의 행동과 네가 하는 말들이 모순된다고 느끼는 지점도 많았다.
이를 테면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너라던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너무 귀찮다고 말하는 너라던지.
나는 네가 너를 꾸며내고 있는 거라면, 어느 쪽이 진짜 너인지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