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가엾지 않니, 더 나은 존재란.

by 회복하는돌

“내가 과에서.... 어떤 식으로 소문나 있는지 정돈 나도 다 알아. 자괴감도 느끼지만, 어쩌면 나는 그때의 질투를 인정했기에 솔직할 수 있는 거야. 많은 사람을 만나던 그 애가 너무 부러웠으니까.”

“외롭지는 않아?”

내가 무슨 이유로 그걸 물어봤는지 나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그 말을 할 때 너의 표정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였을까. 아니면 끊임없이 남자를 만나는 네가 분명 결핍이 있을 거라 평가했기 때문이었을까.


“가끔은 모든 게 시답잖은 놀이 같지.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내 좋은 부분만 골라 먹으려 하는 남자들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게.”

그 말을 하고 너는 내 어깨에 살짝 기댔다. 나는 어떤 말로라도 너를 위로하고 싶었다.

“너는 네 행동이 어떤 의민지 알고 있잖아. 너는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은 존재야. 그 애들이랑 넌 달라. 다들 널 질투하는 거야.”

힘주어 그 말을 하던 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내가 왜 그 말을 위로랍시고 건넨 건지 알 수 있었다. 너의 행동을 꼬집는 걸 모두 질투라고 묶어버리면, 나는 너에게 무해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었으니까. 그들과는 다른 범주로 너의 영역에 속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내 말에 너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기대 있었다. 그러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너는 반문했다.

“더 나은 존재 같은 게 정말로 있다면, 그건 너무.... 가엾지 않니.”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이었을지, 그 후 나는 아주 오래 고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너는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보다 더 나을 수는 없는 거라고, 우리는 누군가보다 열등하거나 우월하기 위해 이곳에 온 존재들이 아니라고. 너는 내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을 다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너의 말이 오래 맴돌다가 발밑으로 조용히 내려앉던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그러는 사이 너를 중심으로 한 소문은 점차 그 크기가 커져 갔다.

언제나 진실보다 크게 부풀려지는 것. 그 거대한 몸집의 소문은 늘 진실보다 빠르게 도착했고 너는 다시금 입방아에 올랐다.

3학년으로 올라가던 해에 너는 갑작스레 휴학을 했고, 너와 친했던 한 남자 선배 또한 같은 학기에 휴학했다. 소문에 따르면 너는 둘 사이의 아이를 갖게 된 거라고 했다.


네가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봤다, 학교 근처 산부인과에서 마주쳤다, 선배와 크게 다투는 모습을 봤다는 여러 동기들의 증언으로 그 소문은 진실이 되어갔다.

그러나 너와 그 선배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너 혼자 그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싸구려 드라마 같은 각본이 떠돌기 시작했다.

마치 너의 추락을 응원이라도 한 것마냥 사람들은 너를 동정했다.


불쌍해, 어떡해, 여자애 혼자 두고 진짜 쓰레기 같은 새끼, 우리라도 혜지 편 들어주자, 그런 이상한 말들이 너를 감싸 안는 척하기 시작했다. 정말 너의 말처럼 동정과 질투는 맞닿아 있었다.

너의 눈물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꼈던 나도 너를 동정한 거였을까?

너에게서는 한 통의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 몇 번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더니,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받기 시작했다. 번호를 바꾼 것이었다. 그렇게 너는 나에게서 쉽게 멀어졌다.

‘혜지야,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ㅠㅠ’

‘혜지야, 이번 학기에도 안 나오는 거야?’

나는 노란색 말풍선으로만 꽉 찬 대화창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어느 날, 그 대화방을 나와버렸다. 너와 찍었던 몇 없는 사진들, 오래 지우지 못했던 그 사진들조차 모두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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