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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Sep 11. 2016

우아하게 버려라

우아함은 거절에서 비롯된다

우아함은 거절에서 비롯된다.
- 코코 샤넬 -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그런데 영화를 잘못 고른 느낌이었다.

뚝 뚝 끊기는 스토리 전개가 지루하여 하품을 하다 스마트폰을 쳐다봤다.

겨우 15분이 지났다.


영화가 끝나려면 아직 1시간 15분을 기다려야 한다.

팝콘으로 향하는 손이 빈번해지더니 이내 콜라와 함께 동이 나버렸다.

이 영화가 나를 붙잡는 이유는 오로지 '본전 생각' 때문이다.


참 이상한 생각이다. 본전 생각이란 것은.

이미 판단이 끝난 일에 나를 붙잡아 두는 미련한 생각이다.

어차피 1시간 15분을 팝콘도 없이 하품만 해야 할 텐데.


이런 본전 생각을 경제학자들은 '매몰 비용의 오류 sunk cost fallacy'라고 말한다.

영화티켓 값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회수 불가능한 돈이다.

15분 만에 영화의 가치를 알아봤다면 나머지 1시간 15분은 내 마음이다. 자리를 떠도 된다.


본전 생각이란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쓸데없이 만든 명분이다.

결국은 더욱 깊은 늪으로 들어가는 심리적 함정일 뿐이다.


콩코드를 만들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그랬다.

1962년, 영국의 브리티시 에어웨이와 프랑스의 에어프랑스가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 개발에 착수했다.

그런데 개발과정에서 연료비가 비싸고 승선인원이 적어 사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들어간 투자비용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거창하게 시작한 큰 사업에 어느 누군가가 나서 중단하기가 꽤 어려웠던 것이다.

이럴 때 하기 쉬운 선택은 사업을 정당화시키는 의사결정이다. 바로 본전 생각이다.

결국 늪에 빠졌다.


2003년, 적자를 이겨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야 콩코드는 운항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후 콩코드는 '매몰 비용의 오류'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고, 같은 뜻 다른 말로 '콩코드의 오류 Concorde fallacy'라고 불리는 불명예도 얻었다.


의외로 우리의 삶과 비즈니스는 콩코드의 오류로 넘쳐난다.

그것을 알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본전 생각이다.

결국 그것은 우리를 포기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로 둘러 쌓이게 만든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물건들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지.

아마 책상만 봐도 1년 넘게 손길조차 미치지 못한 물건들이 버젓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쓰게 되겠지 하는 미련한 생각에.

이런 물건에 대한 미련을 말끔하게 해결해 준 여성이 있다.

‘정리의 마법’ 저자인 곤도 마리에다. 그런데 그녀는 아주 독특한 질문을 던진다.


“물건을 만졌을 때 마음이 설레는가?”


즉, 물건을 만졌을 때 마음이 설레면 남기고 그렇지 않으면 버린다는 것이다.


'정리의 마법' 저자, 곤도 마리에


그녀의 말에 따르면 당신의 일상을 설레고 빛나게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주변을 설레는 물건으로 채우고 설레지 않은 것들은 과감하게 버리면 된다. 


지금 책상 위의 물건들을 만져보기 바란다. 

설렘이 느껴진다면 당신의 앞날에 도움을 줄 빛나는 물건이다. 

미련이 느껴진다면? 아마 쓰는 일도 없이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버려야 한다. 


잘 버리고 포기해서 성공한 비즈니스 사례도 있다. 

바로 영국 핸드메이드 화장품 ‘러쉬 LUSH’다. 

그들은 포장지를 버렸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러쉬의 창립자 ‘마크 콘스탄틴’은 말했다. 


“근사하게 포장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막상 포장을 뜯어보면 생각보다 용량은 크지 않죠. 

이런 경험은 소비자들을 불쾌하게 합니다.” 


'러쉬'의 창립자, 마크 콘스탄틴


하지만 그의 진짜 의도는 버림으로써 얻은 것에 있었다. 러쉬는 향기가 유별난 제품이다. 

러쉬의 매장은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도 향기로 인해 존재를 알 수 있을 정도다. 

포장지를 포기한 덕분에 강렬한 향기가 사방팔방 퍼지기 때문이다. 


“일부러 향이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포장지로 꽁꽁 싸매 놓으면 냄새를 못 맡잖아요. 

저희 매장에서는 <냄새>가 일종의 사용자 경험이거든요. 재미있잖아요.”

 – 마크 콘스탄틴. 


러쉬는 포장만 버린 것이 아니다. 제임스 H. 길모어의 <진정성의 힘>에 따르면, 러쉬는 영어의 접두사 ‘un’과 너무 잘 어울리게 많은 것을 버렸다. 


"러쉬가 판매하는 상품은 그대로 드러나 있고 unwrapped, 병에 담기지 않으며 unbottled, 구매자가 특정한 제품을 원하는 양만큼 선택할 때까지 포장하지 않고 unpackaged, 코팅되지 않은 uncoated 봉투를 사용한다. 

자르지 않은 uncut 비누 조각들이 전시되고, 매장 인테리어는 마감되지 않은 unfinished 것처럼 보인다. 벽은 페인트칠도 안 되어 있고 unpainted, 손질도 안 된 untreated 채 노출되어 있다. 콘크리트 바닥에는 카펫도 깔지 않고 uncarpeted, 타일도 깔지 않는다 untiled."


- '러쉬'의 포장 없는 제품들


버려야 한다고 버리는 것에 집중하라는 뜻은 아니다.

버림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쉬는 포장지를 버리고 향을 취했다. 궁극적으로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을 부각한 것이다.

결국, 버린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더 좋은 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소중한 것이 희석되는 효과를 간과한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 많은 것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소문난 맛집은 의외로 메뉴가 단출하다. 

해장국 맛집은 해장국으로만 승부하고, 설렁탕 맛집은 설렁탕으로만 승부한다. 

생뚱맞게 돈가스를 팔지 않는 곳이 맛집이다. 

나머지 메뉴는 거절함으로써 가장 큰 장점이 희석되지 않게 했다. 

명품 브랜드 ‘샤넬’을 만든 ‘코코 샤넬’도 이런 말을 했다. 


“우아함은 거절에서 비롯된다. Elegance is refusal."



무엇이든 다양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은 오히려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많이 산만하다. 

우리는 컴퓨터를 보며 한 시간만 일해도 모니터에 수십 개의 창을 열어 놓는다. 

심지어 듀얼 모니터도 쓴다. 


우리는 사실 스마트하지 않다.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것이 스마트한 것인가.

그냥 걷기만 하는 게 스마트한 것이다. 


멀티태스킹은 스마트한 게 아니라 ‘주의력결핍장애’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어 좋은 것은 기술이어야지 사람이 아니니까. 

철학자 세네카도 말했다. 


“어디에나 있는 자는 아무 데도 없는 자다.” 


당신의 오늘은 빛날 수 있다. 

어제를 버릴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도 빛날 수 있다. 

오로지 집중한다면. 

바로 지금, 이외의 모든 것들을 버리자. 

우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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