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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Nov 25. 2018

말없음에 대한 딴생각

말없음의 표현

멀없음의 표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글을 썼다. 매일 이른 아침이면 그녀가 눈뜨기 전에 나의 카톡이 바빠졌다. 설렘과 두근거림이 반짝반짝 영감을 쏟아내곤 했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그녀의 모습과 닮아 있었고 내가 숨 쉬는 모든 호흡에서 그녀의 숨결을 더듬었다. 스마트폰 천지인 자판을 타고 나의 사랑은 넘실넘실 카톡카톡 거렸다.


사랑하는 마음을 '사랑해'란 한 단어로 쓰는 바보가 어디 있나. 때로는 은유로 때로는 비유로 내 마음은 호수가 되기도 했고 그녀는 샤갈의 <산책>에 나오는 벨라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쓴 글은 카톡이라기보단 한 편의 시가 되거나 연애편지였다. 아니 노래라고 해야겠다. 매일 아침 그녀가 눈을 떠 스마트폰을 처음 열어봤을 때 새로운 하루 새로운 사랑을 알리는 세레나데가 되었다.


지금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과거형으로 얘기했으니 그렇게 이해해 주길 바란다. 간혹 내가 진행하고 있는 '글쓰기 멘토링'에서 글쓰기의 동기와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위와 같은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누구나 한 번쯤 사랑하는 사람과 카톡을 나눈 경험이 있을 테니까.


그것은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짧은 한 문장 카톡이겠지만 온 마음을 담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번뇌의 산물이었다. 그것을 읽어 줄 사람을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에이핑크에 '1도 없어'는 씁쓸한 노래지만 카톡에서 '1도 없어'지는 순간은 늘 짜릿했다.


글쓰기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다 들어있다. 첫째, 표현하고 싶은 간절함. 둘째, 정성이 담긴 문장. 셋째,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


글쓰기 멘토링에 유독 말이 없는 여성 회원이 있었다. 한 번은 나에게 글쓰기와 관련된 질문을 하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위와 같은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다른 회원이 내 옆구리를 볼펜으로 쿡쿡 찌르는 것이었다. 귀띔하기를 최근에 실연당하신 분이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사랑으로 설레었던 감정을 상기시키고 앉았으니, 그분은 다시 말이 없는 회원으로 돌아갔다. 꾹 담은 입술은 말이 없음을 표현했지만 그것은 뭔가가 아늑하게 서린 말없음이었다. 문득 이런 딴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현재 진행형이든 현재 이별형이든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표현하고 싶은 간절함이란 사랑과 무관하게 존재하지않을까?'


이렇게 간절한 표현 욕구를 우리는 십중팔구 '말하기'로 푼다. 세종대왕께서 세상의 모든 말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든 것이 훈민정음이고 한글이라 했다. 다만 그것으로도 말하지 못할 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말없음'이다.


말없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하고자 하나 말하지 못함'이요 또 하나는 '말할 수 있으나 말하지 않음'이다. 그렇게 말문이 막히고 내적 갈등이 극에 달하면 말문 대신 '글문'이 열리게 된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리베카 솔닛이 말했다. 어쩜 이렇게 글쓰기를 잘 정의했는지 모르겠다. 내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말없음의 글쓰기'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말이 없는 그 회원은 백세희의 에세이를 들고 다녔다. 떡볶이를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자신도 정신과 상담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책은 저자가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대화 내용을 담은 수필이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글 잘 쓰는 법을 대신해 은유의 <쓰기의 말들>이란 책을 권해 주었다.


한 달 후, 모든 회원들이 글쓰기 과제를 제출하는 날이었다. 유독 말 없는 회원이 쓴 글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녀로부터 건네받은 원고엔 <회상>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두 장 남짓한 원고의 몇 줄만 읽었는데도 가녀린 숨소리가 느껴졌다. 실연에 대한 글이었다. 느닷없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내용이었는데, 그냥 어두운 글이라고 하기엔 감정 선의 묘사가 치밀하고 선명했다. 흔들리면서도 중심이 잡힌 묘하게 진동하는 글이었다.


그 글은 아프지만 성숙했다. 애써 감미롭게 포장하지 않았고 원망하는 마음도 서슴없이 담았다. 아마도 이별을 부정하고 복기하고 뒤집어 보고 그러다 다시 받아들이며 오래 뒤척인 가슴으로 쓸어낸 글의 위력일 것이다. 좋은 글은 자기 가슴을 뚫고 나와 남의 가슴을 적신다.


말이 없었던 그 회원이 쓴 글이 바로 '말없음의 글쓰기'였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말하고 싶었던 진심이 오랜 가슴앓이로 정제된 글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말로 하기 어려울 때, 말이 되지 않을 때, 말로는 부족할 때, 말로 하고 싶지 않을 때,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때, 그 어떤 말없음의 상태에서도 글은 수많은 표현들을 뿜어낸다.


모두가 글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표현하고픈 간절한 진심이 있다거나 오랜 말없음을 간직한 이는 드물다. 하지만 어떤 진심과 어떤 말없음은 그 주인이 글로 빚어내야만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 그 사람 중 한 명은 당신일 테고, 어쩌면 그게 당신도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말없음에 대한 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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