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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Jun 26. 2019

자기언어로 쓰는 글

[글쓰기]에 대한 딴생각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래."


벚꽃이 만개한 봄날에 어느 여고생이 남긴 소회였다. 난 이 문장을 인스타그램에서 보자마자 '좋아요'를 눌렀다. 해마다 벚꽃 필 무렵이면 다가올 중간고사를 대비해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빗댄 표현이었다. 문장은 짧지만 여운이 있다. 벚꽃이 피면 설렌다는 이 세상이 학생들에겐 위선이고 가식이다. 드라마 'SKY 캐슬'에서 불렀던 '위 올 라이 We all lie' 같은 게 벚꽃이다.


"그의 기습적인 키스는 협소하고 어둡고 닫힌 풍경에 균열을 내고 빛을 들이는 위로임에 틀림없었다. 눈을 감고 입술과 혀만 집중하게 되는 키스의 야만적인 희락이 오므라든 나를 벌리게 했다. 헤프다는 것은 타자의 규정이고 내게 다가온 키스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이웃 블로그를 읽다가 단번에 사로잡힌 문장이었다. 적나라하지만 벌어진 입술 안에 소신이 담겨 있었다. 클럽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의 키스가 무의미하다고 해석될 때쯤에 유의미하게 결론을 내리는 대담한 문장이었다. 그 블로그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의 블로그였다. 가끔 그녀는 미혼이었을 때의 에피소드를 재미있고 의미심장하게 풀어냈다.


SNS나 블로그에서 접하는 이웃들의 일상은 소소하면서도 평범한 소재들이다. 그게 너 나 할 것 없는 삶일지라도 각자의 시각이 주는 독특함이 삶을 생기있게 만든다. 자기 생각을 객관으로 치환하거나 언어가 타자화되어 있지 않다. 기어이 자기 언어를 토해 낸다. 유명 작가나 전문가의 글은 아닐지라도 자기 목소리가 있는 글, 이런 글이 좋은 글이다.


언제나 후배들을 만나면 좋은 글을 써보라고 권한다. 누가 읽어도 '좋아요'를 눌러 줄 만큼 좋은 글을 쓰라는 의미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기 목소리를 표현해 보라는 의미에서였다. 문득 삶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나 상실감을 언어로 더듬어 보기를 권했다. 자기 사유의 형체를 더듬고 고민의 생김새도 만들어서 갈등의 단초가 언어로 짐작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 언어가 형성되는 체험을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듣는 대답은 "글쓰기는 어려워"였다. 맞다. 글쓰기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더군다나 타성에 젖지 않은 자기 언어를 형성하는 일도 그리 만만치 않다. 자기만의 여행기를 써보고자 했던 배준호란 사람도 그랬다. 그는 7년간 정들었던 직장을 떠나 아내와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날 계획을 세웠다.


삼성SDS에서 탄생한 이 사내커플(배준호, 조유진 부부)은 2014년 어느 날 갑자기 세계여행을 결심한다.


야심 차게 떠났지만, 회사를 벗어나 모험적인 여행을 시작했을 때 그가 가진 부담감은 매우 컸다. 여행을 통해 반드시 많은 걸 얻어 가야 한다는 강박이 그가 쓰는 여행기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말하자면, 너무 열심히 여행을 했다. 매 순간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고 수많은 것들을 편집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몇 시간씩 글도 쓰려니까 하루하루가 그런 곤욕이 없었다. 여행을 통해 삶을 반추하고 자신의 진정성을 찾기를 원했던 바람은 오히려 여행기에 희생당하고 말았다.


그런 여행기는 자기 글쓰기가 아니라 부담만 잔뜩 짊어지고 쓴 '보고서 글쓰기'가 돼버린다. 그렇게 힘든 여행이 50일쯤 지났을 때,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아내 조유진이 한 마디 건넸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여행기를 전부 바꿔 놓게 되었다.


"오빠, 힘들면 하루 세 줄만 써."


이 한마디가 그에게 많은 것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비로소 여행이 보이고 여행을 하는 자신이 보이고 아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과 동영상과 여행기를 내려놓자 온전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주변의 객관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주관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통해 객관과 주관이 조화를 이루고 관찰과 성찰이 연결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통찰'이라 부른다.


그는 여행을 온전히 즐긴 후, 하루 세 줄의 일기와 한 장의 사진만을 남겼다. 단 세 줄만 쓰겠다고 마음먹으니까 글쓰기에 대한 부담도 덜었다. 간결해졌지만 오히려 자기 목소리는 분명해졌다. 그렇게 SNS에 올리자 좋은 반응도 얻었다. 덩달아 출판사로부터 출판 제의까지 받게 되었다.


배준호, 조유진 부부는 400일간의 세계 여행을 마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세 줄 쓰기 경험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감성 글쓰기 플랫폼 '세줄일기'가 모바일 앱으로 탄생했다.



부담을 안고 쓰는 글쓰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기 언어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세줄일기는 글쓰기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자기 언어를 찾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나는 글쓰기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언어로 쓰는 글쓰기엔 선언적이면서 동시에 주술적인 의미가 담기게 된다.


글쓰기에는 그 사람이 지닌 최상의 인격과 가치가 발휘되기 마련이다. 그 글이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잡아준다. 결국 그것은 자기 정체성을 밝히는 선언적 의미가 된다. 주술적 의미란 그 사람의 미래를 암시한다. 자기 목소리는 이상향을 지향하기 마련이며 자기 언어가 쓴 글은 이상향을 향한 주문이 된다. 자신이 쓴 글이 생각과 행동에 베어나면 고스란히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모두가 한결같은 삶이라고 해도 가슴속 울림은 다른 삶이다. 누구나 똑같이 벚꽃에 설레고 똑같이 클럽에서 만난 이성과 키스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벚꽃의 꽃말을 중간고사로 바꾸고 클럽에서의 키스를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내 안의 목소리다. 그것은 모두의 가슴속에 울림이 같을 수 없다는 자기만의 공명이다.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해 희미하지만 자기 존재감이 일으키는 떨림이다. 종이 위에 또는 SNS나 블로그 위에 토해 내고 생채기를 만들어야 짐작할 수 있는 자기 목소리며 자기 언어다.


내 안의 목소리가 없는 삶은 없다. 다만 귀 기울이지 않았을 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벚꽃이 피면 설레고 사랑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할 때 나에게만 느껴지는 이물감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자기 언어로 표현해 보자. 단 세 줄이라도.





아주 서서히 글을 쓰는 목소리를 찾아냈다.

지적이고 공정하며 이성적인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것이었다.


 - 트레이시 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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