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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Nov 03. 2019

시간에 대한 딴생각

각자의 시간이 있다

각자의 시간이 있다.




최근 물리학이 밝힌 시간 개념은 다소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식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리는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베리’가 시간의 본질을 밝힌 책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수학 공식을 거의 쓰지 않은 이 물리학 책은 눈으로 보기엔 상당히 친절하다. 하지만 내용은 꽤 심오하다. 시간의 흐름이란 인간의 희미한 인지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의 눈엔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의 끝이 어느 숲에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 숲에 가보면 무지개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인지하는 시간의 흐름이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읽어보면 알듯 말 듯 철학적이다.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고 한다. 시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조금 정밀한 시계로 측정해 보면 높은 산과 낮은 평지에서 흐르는 시간이 제각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구의 중력과 관련 있는데 거대한 중력 덩어리는 주위의 시간을 더디게 만든다. 따라서 지구의 중심에서 가까운 낮은 지대는 시간이 느리고 고산지대에서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결과적으로 조금이라도 젊게 살고 싶다면 지구 중심에 가까이 사는 것이 유리하겠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책은 말한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시계라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일종의 관습이며 약속일뿐이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절대 시간을 기준으로 약속을 해야 하는 존재니까. 그게 없으면 약속도 계획도 할 수 없으니까.


사실 우리는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늘 바라보는 스마트폰의 시계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시간만을 알려준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외면당한 채 평균치로 퉁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친 딴생각일까?


과학적 사고의 핵심이란 눈에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대표적으로 평평한 지구 위에 살면서 “지구는 둥글다”라고 주장한 피타고라스가 그랬고, 남들과 똑같은 시계를 보고 살면서 모든 시간의 흐름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아인슈타인이 그랬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은 몇몇 천재들에게만 허용된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딴생각을 하자면, 과학이 증명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시간이란 절대적이지 않다. 상대적이면서 동시에 관념적이기도 하다. 관념이란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은 기다리는 자에겐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자에겐 너무 빠르다. 시간은 슬퍼하는 자에겐 너무 길고, 기뻐하는 자에겐 너무 짧다. 시간은 초조한 자에겐 너무 더디고, 어리석은 자에겐 항상 이르다. 시간은 관념이다.


우리에게 10분이 남았다는 절대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게 퇴근 시간이라면 기쁜 일이겠지만, 그게 인생의 종말이라면 슬픈 일이 된다. 단지 10분이라는 시간은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아니며 아무런 관념이 없다. 관념이 없는 시간은 무의미하다.


이번엔 우주를 떠올려 보자. 우주는 가만히 있지 않고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에 해당한다.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 우주에서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간격을 우리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저 우주의 끝은 이미 1,000억 년을 팽창했을지도 모른다. 지구는 고작 우주의 탄생(빅뱅) 이후 137억 년이 지난 시점에 존재한다. 만약 우주의 절대 시간을 1,000억 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863억 년 전의 과거가 된다. 지금 이 순간 우주의 끝에서 어떤 미래가 결정되었다면, 우리는 863억 년이 지난 후에야 그 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우주의 끝이 너무 어렵다면 가까운 태양을 떠올려 보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동원하자면, 태양에서 발사된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8분 20초라고 배웠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태양이 사라져도 지구는 8분 20초 동안 일광욕도 하고 태양광 발전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태양을 절대 기준으로 한다면 지구는 8분 20초 후의 과거가 된다.


천체물리학자들은 광활한 우주의 시간을 근거로 우리는 '이미 결정된 과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우리가 우주의 과거일지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각자의 미래를 계획할 뿐이다. 이 지구가 863억 년짜리 해묵은 과거일지라도 우리에겐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할 따름이니까.


앞서 말했던 지구의 중력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 또한 제각각이다. 시간관리 전문가들은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며 게을리 쓴다고 말한다. 하지만 슬로 라이프 운동가들은 우리가 시간을 빠르게 쓴다고 말한다. 자연의 시간을 무시하고 가속화된 경제의 시간에 매몰되었기에 마치 닭장 속에 갇혀 빨리빨리 사육되는 닭처럼 인간성이 포악해졌다고 말한다.


지리학자라면 지구 시간대나 날짜 변경선을 얘기할 수도 있다. 지구 자전과 반대 방향으로 세계 일주를 하면 하루가 공짜로 생긴다는 팁을 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지구 시간대로 따진다면 뉴욕은 캘리포니아보다 3시간이 빠르다. 그렇다고 캘리포니아가 뒤처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일찌감치 25세에 꿈을 이루었지만, 30세에 사망했다. 또 어떤 사람은 50세가 돼서야 뒤늦게 꿈을 이루었지만 90세까지 살았다. 오바마는 55세에 은퇴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70세에 시작했다. 그들에게 절대적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절대 시간이란 존재하지도 않으며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늦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이미 지났다는 것은 언제를 말하는 걸까?

이미 끝났다는 것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



시간에 대한 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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