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태도 ep.2 - 거절하는 태도
내가 현재 몸을 담고 있는 회사는 매년 연봉협상 전에 자기 평가를 하는데, 올해 자신의 성과와 부족했던 점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해야 한다. 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해 모두 "거절하는 역량이 부족합니다."라고 써냈다. 사실 저때는 내가 특별히 무엇을 잘하고, 부족한지를 아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도 성과는 내가 한몫이 있으니 잘 포장해 정리하면 된다지만, 내가 부족한 점을 알기에는 업무의 경험치 자체가 부족했다. 결국 '일하는 나'를 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물론 지금은 거절 따위 웃으며 가볍게도 하지만, 그 시절엔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사회초년생 때는 더욱이나 반은 거절당하고, 반은 거절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별볼 일 없는 제안이 인바운드로 들어왔을 때 "이 건은 00님이 커뮤니케이션해서 거절해 주세요."라며 떨리는 업무를 맡게 되고, 야심 차게 신입의 마음으로 기획한 내용은 거절당하기 일쑤였으니까.
아무튼 현재는 일을 한지 만 4년을 바라보는 입장으로서 얼마 전에 몹시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한 제안서를 파트너사에 전달했다. 이렇게 제안할 때는 보통 기본 일주일은 조급해하지 않고 얌전히 기다리는 법인데, 이날은 5시간도 채 안되어 바로 연락이 왔다. 거절당했다. 아무리 좋은 기획이라 할지라도, 사실 제안하는 입장에서는 무응답과 거절당하는 것이 디폴트 값이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 편이다. 근데 이번에는 꽤 많이 화가 났다. 불쾌한 거절의 태도 탓이었다.
1. 전화로 때우는 거절 - 대표 홈페이지 통해 제안했던 것인데, 02로 시작하는 회사 유선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어느 브랜드의 누구입니다.라고 하는데 목소리로는 사실 이름 세 글자를 분명하게 듣기 어렵다. 자신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메일주소, 성함, 직책, 전화번호 등) 회사 전화로 대충 때우는 거절이었던 것이다.
2. 납득 가지 않았던 거절의 이유 - 흔히 하는 실수가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얼토당치 않은 변명의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거절은 예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솔직하면서도 충분히 납득 가능하게끔 전달하는 편이 좋다. 가령 "너무 좋은 아이디어인데 지금은 시점이 안 맞아서요."는 거절당하는 이에게 다음번을 기다리게 한다. 차라리 "예산이 맞지 않아서요.", "저희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미지/방향성과 맞지 않아서요."(이때는 나아가 어떤 목표와 방향성으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지 한 줄로 설명해 주면 좋다.) 등이 더 낫다. 거절받는 이를 이해시키게 얼마나 자비로운 것인지 거절하는 이는 알 필요가 있다.
3. 뻔한 인사라도 필요한 법 - 인사는 일하는 사람에게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자세이다. 우리 회사, 우리 브랜드를 생각해 무언가를 고민하고 제안한 사람에게, 그 소모한 시간에 대한 감사 인사는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 회사에 관심 갖고 좋은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먼저 말하고, 그다음 다만, 이라는 부사를 이어가면 된다.
4. 네트워킹의 필요성 - 다음번을 기약하는 아름다운 직장인의 자세 또한 필요하다. 일을 하면서 점차 느끼게 되는 것은 사람은 다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아쉽게도 협업하지 못하지만 다음번 좋은 기회로 다시 만나길 기대합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내면 이 사람에게는 다음에 내가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민망하지 않게 연락할 수 있는 하나의 네트워크가 생성되는 것이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 업무적 능력과 역량이 물론 뒷받침되어야겠지만, 사람에 따라서 일이 되고 틀어지고 하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결국 태도도 역량이자 능력이 되는 것이다. 거절을 잘하고, 잘 거절당하는 것이 성장하는 첫 번째 걸음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아직도 이런 사소한 일에 분개하는 나를 보며 갈 길이 멀았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일하면서 느낀 분노는 나를 더 움직이게 만든다는 장점도 있긴 하다. "꼭 성공해서 우릴 거절한 너네 회사를 후회하게 만들 거야!"라는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