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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Nov 26. 2021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이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니!



아침에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버스 올라타면서 항상 기사님께

"안녕하세요?" 한다.

그런데 인사를 아무도 안 받아서 신기하다.

마스크에 가려졌지만 웃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눈으로 열심히 웃으면서 하는데~


아무튼 그냥 누구에게든

'당신을 만나서 반가워요. 좋은 날들 보내시길요.'

라고 말하고 싶은 나의 바람을 담은 일종의 의식.

'오늘은 받을까?' 하면서 인사한다.

내 목은 자고 일어나 이때 처음 소리를 낸다.

아이들과 남편이 자니까 조용히 나오기 때문에





버스 타면 자연스럽게 기사님 뒤에 앉는 편이다.

기사님 뒷자리가 비어있으면

날 위해 준비된 자리 같고

그렇게 마음이 평안할 수가 없다.


웃기다.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를 깨달았는데...


어릴 적에 초등.. 아니 그땐 국민학교지. 아무튼 담임 선생님께서 버스 탈 때는 교통사고를 대비해 기사님 뒤에 있는 줄에 앉으라 했기 때문이었다.

운전자는 위험에 처했을 때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린다는 것이 그 이유다.

운전대는 왼쪽으로 꺾일 것이고 그럼 운전자 쪽 아닌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사람은 보호막이가 된다면서...


!



와.. 그래서 내가 이쪽을 선호하고 있었다니..


초등학교 앞 지나가야 해서 30km이하로 가는 두 정거장의 길에서 죽을까봐... 나도 모르게 이 줄에만 앉고 있다니...


그냥 마음이 편안해져서 글루 앉는 건 줄 알았는데 말이다. 사실은 내가 나를 무지 아끼고 무지 사랑하고 있구나...





아이들이 2층 버스 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길 쪽 창가에 앉아야 바깥 구경하기에 좋다고

버스 올라타면 은근한 자리 경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길이 예쁠 때는 보호막이(!) 자리에 가서 앉을 때도 있었다. 뭔가 마음은 좀 불편했지만(죽을까봐였겠지?) 그 쪽이 훨씬 내가 지나가는 공간을 아름답게 보여줬으니까...


안전한 줄에 앉으면 사실 지나가는 차가 잘 보인다. 마주 오는 승용차, 버스... 가끔 내 버스 기사님께 인사하시는 기사님도 보이고.



우야든지 간에 내가 버스 타면서 배운 것은

내 마음이 불안하고 편안하고는

참~~~ 업데이트 되지 않은

옛날꽃날의 기억들이 주관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내가 나를 어얼~~마나 애끼는지, 소중히 하는지, 죽을까봐 걱정하는지 알게 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래서 어쩌면 정말 다행이라는 것.


새로운 하루들을 살면서 업데이트해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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