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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ms Dec 02. 2016

병신년을 보내고, 정유년을 기다리는 문턱에서

새해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 바로 지금, 내가 달라져야 한다.

매년 12월 말미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며, 다음 해를 위한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올 한 해는 내게 너무 가혹한 해였고, 뜻한 바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지만 년이 오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 부푼 기대를 안았습니다. 그렇게 다가올 한 해에는 행운이 가득하기만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매년 12월 말일이 되어서야 급하디 급하게 한 해를 얼렁뚱땅 마무리 짓고, 이렇다 할 만한 계획도 없이 허황된 희망만 안은 채 무방비로 새 해를 맞이했습니다. 지난 날의 반성도 충분하지 않았고, 새 해를 맞이할 준비도 한없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 해부터는 조금 더 이르게 한 해 동안의 행적과 과오들을 돌이켜보고, 다음 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구 선생님께서도 이혼을 앞둔 부부에게 4주의 조정 기간을 주셨듯이 저도 4주의 기간 동안 병신년 한 해를 제대로 마주하고, 보다 경건하고 치열한 마음으로 정유년을 맞이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6년 병신년, 역시나 제게 숱한 시련과 고난, 역경, 패닉, 멘붕, 시험, 실패, 좌절을 경험하게 해준 한 해였습니다. 연말이 다가왔고, 올 한 해는 이미 글렀으니 내 년을 기약하고자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졸업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 해도 제게 시련과 고난을 주지 않았던 해는 없었습니다. 매년 힘들었고, 고생스러웠고, 뜻한 대로 이루어진 일들도 없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매번 내년에는 잘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한 해를 떠나보냈고, 이전 해와 다를 바 없는 새 해, 이듬 해를 맞이했습니다.


올 한 해는 지독하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왜 신은 내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빨리 올 한 해가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매번 내년을 기약하던 사이 제 속에서 곪고, 썩어가던 고름이 병신년에 드디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운과 상황이 따르지 않았다는 핑계로 돌리고, 수년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진단하지 않고, 오랜 시간 썩어가던 고름을 방치하고, 외면했던 제 탓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로지 제 탓이었습니다.


혹시라도 큰 병이 발견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에 종합검진을 외면하셨던 부모님의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방치하면, 안타깝게도, 병이 커지고, 사단이 난 뒤에야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어찌됐든, 다소 늦었지만 제 안에서 터진 고름을 보게 되었습니다. 병신년 한 해는 실제로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해였습니다. 운이나 상황 때문이 아니라 과거부터 반복됐던 방치와 외면이 키웠던 병이 올 해 들어 크게 터지면서 드러난 것 뿐이었습니다. 말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부끄러웠습니다.


깊은 절망에 빠졌고,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고,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었고, 아무리 외면하려 발버둥을 쳐도 현실은 바뀌기는 커녕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다 지치고 지칠 때 즈음, 오갈 데 없는 코너에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과 직접 마주했고,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잘못된 생각, 행동, 습관들이 원인이었음을 하나씩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병이 이미 커질대로 커진 상태에서 발견한 터라 제대로 병을 치유하고,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젠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하나씩 돌파해 나갈 생각입니다. 결국, 이 병을 이겨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이제 작은 발걸음을 떼었을 뿐이지만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상황은 그대로이지만 상황을 마주하는 내 생각과 태도가 변화했고, 병이 다 나을 즘이면 예전보다 더 건강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더욱 건강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보입니다.


어차피 이겨내야 할 시련이라면, 더 당당하게, 더 자신있게 마주하고 이겨내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병신년을 마주하고 돌이켜보며 되새겼던 교훈들이 있습니다.


# Plan A 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물론, 생각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었고, 항상 차선과 차차선의 연속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Plan A는 내 욕심이고, 부푼 꿈이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매번 A가 이뤄지지 않을 때마다 실망하고, 좌절했고, 기민하게 다음 Plan으로 옮겨가지 못한 채 주저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내가 만든 허상에 내가 굴복하는 상황의 반복이었습니다.


앞으로는 Plan A 만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물론, Plan A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다만, 되도록이면 Challenging but Attainable Plan A 를 세우고자 노력할 것이고, 매순간 Plan B, C 도 함께 고려하며, Plan A가 실패했다고 해서 주저앉지도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인생의 기회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그 숱한 인생의 기회들은 내가 절망에 빠져 주저 앉아 있는 사이에도 수없이 지나쳐 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한 방을 바라지 않는다.


큰 한 방이 찾아온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다. 하지만, 큰 한 방으로 역전하겠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자 합니다. 어쩌면 Plan A 대로 모든 일들이 풀렸다고 해서 내 인생이 지금보다 더 나아졌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성취의 기쁨에 도취되어 승자의 저주에 빠져 더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고 지나친 결과, 결국 실패의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집어 보면, 수년 동안 차선과 차차선을 택하고, 타협하는 과정 속에서 더많은 어려움들과 마주할 수 있었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더많이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급진적 혁신은 없었지만 점진적 변화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급진적 변화는 모래성 같아 금세 무너져 내릴 수 있지만, 점진적 변화는 오랜 시간 굳어진 콘크리트처럼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쌓게 합니다.


유능한 뱃사공도 세상을 담을 큰 그릇도 하루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이제는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거센 파도가 유능한 뱃사공을 만든다'이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많은 분들의 생각과는 달리, 저는 아직 이렇다 할 만하게 이룬 게 없습니다. 물리적으로나 상황적으로는 잃은 것이 더욱 많습니다. 일일이 공개하고 얘기할 수 없는 큰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항상 마음만 급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그 사이 주변에서는 결혼, 승진, 성공 등과 같은 소식들이 들려오며 저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괴로워 할수록 힘든건 나 자신이었고, 역시나 상황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차분히 하나씩 다시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내 인생의 방향이 다름을 인정하고, 내 길의 방향을 새로이 설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빨리 뛰려고만 했지,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그 길을 어떻게 갈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죽을 똥, 살 똥 뛰어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남쪽에 있는데, 모두가 북쪽으로 뛴다하여 같이 북쪽으로 뛰면 답을 찾을 수가 없겠죠.


내 길이 아닌 곳에서는 열심히, 빠르게 뛸수록 목표에서 멀어질 뿐입니다. 조금 늦고, 돌아가더라도 제 길을 갈 생각입니다.



# 내년이라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달라져야 하고, 지금부터 달라져야 한다.


말 그대로입니다. 병신년 한 해를 돌아보며 얻은 결론입니다. 이제는 내년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제가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고, 수시로 계획을 수정하고, 점검하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달라져야 하는 건 시간, 상황, 운이 아니라 바로 자신입니다. 가장 주체적이면서, 능동적으로, 게다가 즉각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저는 욕심도 많았고, 아직도 그많던 욕심들을 다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져 갈 생각입니다. 대신, 내가 부린 욕심이 합당한 대가가 될 수 있도록 더 준비하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조급한 마음으로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고,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나갈 예정입니다.


병신년 한 해 동안 정말 많은 것을 잃었지만, 반대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아직도 한 달이나 남아 있네요. 떠나보낸 것들, 잃어버린 것들에 아쉬워하지 않고, 제게 남은 것들에 감사하고,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며, 실행해 나갈 것입니다.




Outro.


쓰다보니 글이 꽤 길어졌습니다. 병신년은 매년 반복되던 실패와 실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미래가 밝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대신, 어떤 상황이 닥치건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그리고 묵묵하게 정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와 헤어나올 수 없는 좌절감에 빠져있을 취준생 여러분들에게 제 생각을 공유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 또한,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감 속에 빠져있었고, 이를 극복하고자 많은 시간을 보내고 노력을 기울여야했기에 제 생각을 공유해 드리고, 작게나마 용기와 희망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상황이 바뀌기를, 운이 따르기를 기다리지 마시고, 주체적으로 변화하셨으면 합니다. 꿈을 찾기 위한 노력, 부족한 점을 찾고 개선하고,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분명 기회는 찾아 올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들보다 뒤쳐졌다고, 내가 남들보다 느리다고 생각지 마세요. 나만의 인생 방향을 잡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세요. 다소 늦고, 돌아가더라도 그 과정 조차 여러분 인생에 큰 경험이고, 자산이 되어 언젠가 어떻게든 도움이 될 날이 분명히 생깁니다.


말이 너무 길고 많았습니다. 병신년을 보내고, 정유년을 맞이하는 문턱에서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Ohms 드림



http://blog.naver.com/dard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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