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되면 우울해졌던 적이 있다. 생일인데 왜 이렇게 바쁜 걸까, 생일인데 왜 만날 사람이 없는 걸까. 생일인데 날씨가 왜 이리도 흐릴까, 왜 생일에 생리를 하는 걸까. 생일이면 '특별해야 하는 날'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생일이기 때문에 그러지 못해서 우울해질 수 있는 이유를 끝도 없이 만들어내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알게 되어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 '비혼세' 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본인의 생일에 행사를 기획하듯이 지인들을 직접 섭외하고, 공간을 대여하고 식순을 짜서 파티를 한다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발생하며 두근거렸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내 생일은 내가 직접 나서서 챙기면 될 일이었는데, 나는 그동안 누군가가 내 생일을 '서프라이즈'로 챙겨주기만을 그저 넋 놓고 주저앉아 바라고만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미리 얘기를 해놓고 약속을 잡아야 친구들도 만날 수 있는 것이고, 생일날 일하기 싫으면 연차를 쓰면 되는 것이다. 날씨야 뭐, 어쩔 수 없고.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고 싶다면, 그만큼 오늘은 내 생일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내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기 위한 몇 가지 일들을 계획했다. 생일 즈음하여 고등학교 동창들, 올해부터 친하게 지내게 된 특별한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았고, 생일 전주 목요일에는 반차, 금요일에는 연차를 냈다. 목요일에는 인천으로 클라이밍을 가고, 금요일에는 전시를 보든 영화를 보든 혼자만의 알차게 시간을 즐기자는 야심 찬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코로나 시기에 역시나 '파티'는 아무리 작은 것이어도 사치였을까. 먼저,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약속이 친구 중 한 명이 예상치 못한 질병(코로나는 아니었고)으로 입원을 하게 되면서 무산되었다. 또한 오후 반차를 내고 인천으로 클라이밍을 가려고 했던 당일에, 얼마 전 저녁 식사를 함께했던 다른 친구가 갑자기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면서 클라이밍 원정 계획과 다음날 친구들과 함께 하기로 했던 저녁식사까지 모두 취소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반차와 연차는 이미 결재를 받아둔 상황이었고, 나는 이때 쉴 날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휴가는 취소하지 않고 혼자라도 조용히 쉬기로 했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난 후 대중교통을 타는 게 영 찜찜해서 1시간을 걸어 집에 왔다. (평소에도 자주 걸어 다니기도 했다.)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갑자기 붕 떠버린 시간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어떻게 해야 알차게 보낼지 고민하다가 집에 있던 재료로 요리를 했다. 시가에서 보내주신 콜라비와 당근으로 피클을 담고, 이웃이 나눔 해 준 석류 두 개를 알알이 까며 석류청을 만들었다. 딱히 의미부여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요리를 하게 된 건 아니었지만, 하고 보니 요리는 어쩌면 그 자체로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고요하게 요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이 꽤 포근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천만 다행히도 연차를 쓴 당일에는 마음 편히 어디든 다닐 수 있었다. 날씨마저 맑고 청량해서 실내보다는 바깥을 쏘다니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마침 곧 있음 단풍이 끝나가고 있을 무렵이기도 해서 경복궁에 가보기로 했다. 비록 친구들과의 약속은 아쉽게 취소되었으나 날씨가 도와주는 느낌이었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눈부신 하늘에 감탄하며 주체적으로 생일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연차를 쓴 나 자신을 이제와 다시금 칭찬했다. 어디를 가든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