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이 물에 잠겼다. 이수역과 동작역도 침수되었다. 이번 주에 내린 폭우 때문이었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그 동네에 살았었기 때문에 간발의 차로 재난을 면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천장이 무너진 이수역은 내가 자주 이용하던 지하철역이었다. 관악산에 오르는 등산로 바로 밑에 살았던 적도 있는데, 내가 살았던 그 근처의 어떤 빌라에 사는 주민들은 이번에 산사태로 인해 대피해야 했다. 또,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볼 때는 소름이 돋았다. 신림동에서 혼자 살기 위해 원룸을 구하러 다닐 때 일억 안쪽의 전세를 본다고 했더니 언덕길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반지하의 원룸을 봤던 기억이 났다. 그들은 내 가까운 이웃 일수도, 내가 될 수도 있었다. 강남역 인근에 살았던 적도 있다. 한때 매일같이 걸어 다니던 그 길이 택시 윗부분만 보일 정도로 물에 잠긴 걸 보니 비현실적이었다. 지금, 서울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평행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비현실적인 엄청난 재난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무서웠다. 맞다, 사실 현실이 원래 무서운 법이었다.
서울에서 동탄으로 이사 온 건 5개월 전인 3월이었고, 이곳에서 서점을 차린지는 고작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서점은 1층에서 경사로로 약간 내려오는 구조로 되어있어 1층 같은 지하 1층이다. 이곳에서 폭우를 겪은 건 처음이라 어떨지 몰라서 혹시나 연지 얼마 되지 않은 서점이 침수될까 봐 걱정되었다. 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월요일, 화요일 밤에 CCTV를 몇 번 확인했는데 다행히 별 탈 없이 지나갔다. 폭우가 오는 기간 동안에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던 건 예상했던 바라 괜찮았다. 그저 물에 젖은 책들을 건져내며 물을 퍼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지만 자꾸만 ‘만약’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괜찮지만 만약에 내가 사는 집이 하루아침에 침수되었다면, 만약에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데 느닷없이 빗물로 가득 찬 도로를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직은 살면서 그런 재난 때문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어본 적이 없다. 이번 폭우가 아니어도 재난은 늘 있어왔고, 나는 그 모든 재난에 크게 몰입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유독 이번 일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건, 심각한 비 피해를 입은 지역이 모두 내가 한 때 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운 좋게 피해를 비켜나면서 나는 그저 ‘괜찮구나’하고 우두커니 있어도 되는 걸까 생각했다. 서점 인스타그램에 ‘저희 서점은 다행히 침수 피해를 입지 않았어요. 다른 지역도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기를 바랍니다’라는 피드를 올리며 잠시 고민했다. 이걸로 된 걸까. 이미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그렇지만 달리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우리 서점의 안부를 걱정해준 고마운 이들도 있어서 그분들을 생각하며 일단은 내가 괜찮다는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마침,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한 친구가 침수 피해를 입은 분들을 위한 모금에 동참하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꺼냈다. 그 대화방은 1년 넘게 함께 SNS 인증을 통해 글쓰기를 하고, 매주 금요일 밤까지 마감을 하지 못하면 벌금 5천 원을 내는 모임이었다. 여기서 모인 벌금이 18만 원이 되었는데, 본래부터 이 돈을 좋은 일에 기부하자는 취지로 모으고 있기도 했다. 먼저 생각해주어서 고마웠다. 친구의 말이 아니었으면 나는 그 침수피해를 지켜보며 느낀 무거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냈을 것이었다. 사실 그 모임에 있으면서 올해는 내가 마감을 지키기 못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인 벌금에 내가 보탠 돈은 없었다. 그래서 대신 적은 금액이나마 개인적으로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침수지역에 있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것보다, 폭우가 더 큰 피해를 입히지 않길 바란다는 글을 한 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2020-2021년) 사람들이 기부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45.8%)’이거나 ‘기부에 관심이 없어서(35%)’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부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남을 돕는 것이 행복하므로(28.7%)’를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26.2%)’가 그다음이었다. 기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친구가 먼저 기부 얘기를 해서 관심이 생겼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내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겠다’였다. 내가 몇 억씩 돈을 쾌척할 수 있는 자산가가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내가 보태는 돈은 하나도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을 위해 쓸 여윳돈이 전혀 없다고 하기엔 양심에 가책이 느껴진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쓰거나 육식이 환경과 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비건식을 늘려나갈 때, 문득문득 드는 생각과 비슷하다. 내가 이만큼 하는 게 정말로 가치가 있는 일일까. 따지자면 그 가치는 당장의 수고로움에 비하면 하찮게 보일지 모른다. 따릉이를 타면 어플에 나오는 것처럼, ‘탄소배출을 0.5kg 줄였어요!’ 하는 식의 수학적인 환산이 내게는 따릉이를 계속 타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내 안에서 이유를 찾았다.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이 환경을 해칠 수밖에 없다는 죄의식을 끌어안고 살아야 해서, 조금이라도 내 마음이 뿌듯해지려고. 오늘은 그래도 이걸 했다는 그 마음. 내 행동으로 뭔가가 바뀌고 있는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내 행동으로 내 마음을 조금 더 밝게 바꿀 수 있다. 내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된 것 같다. 기부도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내게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소비에 가까운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그거면 충분하다. 내게 의미가 있다면. 어쩌면 내 기분이 괜찮아지자고 하는 행동이 다른 이에게까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