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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Nov 25. 2022

인간은 왜 겨울잠을 자지 않는 것일까

겨울이 너무 싫다. 달리 말해 영하의 추운 날씨가 너무 싫다. 추위 때문에 몸이 움츠러들고 뭔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도 바스락 거리는 낙엽처럼 메말라간다. 겨울이 되면, 인간은 왜 겨울잠을 자도록 진화하지 않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물의 털과 깃털을 빼앗아 만든 옷을 껴입어가며, 화석 연료를 태우거나 전기를 마구 써야 하는 난방 기기를 틀며 추위를 이겨내야 할 때면, ‘인간은 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며 겨울에 활동을 해야 하는 걸까’ 생각한다.


애초에 맨몸으로 겨울을 날 수 있는 신체가 아니면 따뜻하게 만들어 둔 집에서, 보통의 동물들처럼 겨울을 날 식량을 미리 준비해두고 신체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며 겨울잠을 자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겨울만 되면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대체 겨울을 어떻게 해야 잘 견뎌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올해는 얼마나 추울까, 앞으로 3개월을 어떻게 버티나 벌써부터 막막하다.


실내에 있어도 손과 발이 시리다. 그렇다고 온풍기를 틀면 눈과 피부가 건조해져서 힘들다. 핸드크림을 자꾸 발라도 손에 습기가 자꾸 말라서 뭔가를 잡으려 할 때마다 따끔따끔 정전기가 올라온다. 키보드를 앞에 두고 타이핑을 할 때면 손이 시려 견딜 수가 없어서 손등까지 보호해주는 장갑을 껴보기도 했다. 손이 둔하고 답답해서 금방 벗어버렸다. 그나마 지금은 전기 손난로나 핫팩을 사용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타협을 봤다. 어쨌든 이것도 겨울을 버티기 위해 추가적인 에너지와 자원을 쓰는 일이다.


옷을 두껍게 입으면 목과 어깨가 금세 뻣뻣해진다. 무거운 겨울 옷을 입고 있는 것 자체가 평소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끔 하는 것 같다. 나는 동물성 식품과 제품을 되도록 소비하지 않고 쓰레기를 덜 만드는 비건 지향적인 삶을 살고 싶은데 추운 날씨는 그걸 어렵게 한다. 내 몸은 이미 양털 옷과 구스 패딩의 따뜻함에 적응해버렸다. 적응할 수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들이 인간에게 ‘쓸모가 없었다면’ 다른 동물들을 이용하여 굳이 겨울에 활동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최소한 겨울 외투를 더 사지는 않으며 이미 사둔 옷들은 버리지 않고, 오래오래 잘 사용하는 것이 지금의 내게는 최선이다.


올해는 겨울을 좀 더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차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퇴근할 때는 추위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패딩으로 몸집을 두 배씩 불린 사람들에게 치이며 후덥한 공기 속에서 멀미를 하곤 했는데, 자가용 덕분에 출퇴근길이 너무나 쾌적해졌다. 집 앞에 나가자마자, 퇴근하자마자 주차장에 가면 나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들어가 시동을 켜면 3분 만에 따뜻해지는 핸들 열선과 열선 시트가 내 손과 발을 금방 녹여준다. 차를 갖게 된 후, 아직은 눈이 내려본 적이 없어서 앞유리에 쌓인 눈을 치우거나 바퀴에 체인을 채우는 것 같은 일은 해보지 않았는데 그 정도의 수고로움 정도야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여 울렁거리는 버스에서 매일 멀미를 하는 것보다, 제대로 서있을 틈조차 없는 지하철에 간신히 끼여 실려가다가 내뱉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에 비하면 안락한 자가용에서 내 손으로 따스한 핸들을 잡는 일은 천국이 따로 없다.


환경보호를 말하자마자 자가용 끄는 일을 찬양하고 있자니, 다시금 죄책감이 든다. 역시나 인간이 겨울을 잘 나는 방법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길밖에는 없는 것일까. 인간이 겨울잠을 자게 되면 지구의 많은 생물들에게 훨씬 좋을 텐데. 모든 인간이 겨울 3개월 동안은 출퇴근과 등하교와 온갖 생산활동을 멈추고, 생존을 위한 겨울나기만 하면 어떨까. 그러면 동물의 털과 깃털을 이용한 겨울 외투도 핫팩도 전기 손난로도, 자가용도 필요 없이 집에서 보일러만 적당히 틀면 될 텐데. 내가 결코 일하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전인류가 지구를 위해 겨울잠을 자는 방안에 대해 한 번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쓸데없는 생각일까? 그렇다면 인간이 그토록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겨울에 활동을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나는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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