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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Mar 24. 2023

아침을 채우는 봄비와 글쓰기 손님

7시 30분 알람을 끌 때 어쩐지 평소보다 더 어둑한 느낌이다. 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고 있나… 몸이 물에 젖어서인지, 전기장판의 따스함에 녹아서인지 원래도 일으키기 힘들었던 몸을 평소보다 더더욱 일으키기 힘들다. ‘다시 조금만 더 자자’ 생각하자마자 금방 단잠에 빠져들고 뭔가 모르게 뒤죽박죽 뒤숭숭한 꿈을 꾸다가 겨우 일어났다. 핸드폰 불빛을 보면 잠에서 좀 깰 것 같아 간밤의 소식들을 확인한다. 나를 부르는 소식들은 아니고 저마다 자신을 봐달라고 외쳐대는 소식들이다. 물론 내가 올렸던 게시물에 대해서도 그 사이 얼마만큼의 타인이 ‘좋아요’와 ‘댓글’을 달아주었는지 확인해 본다. 인스타그램의 새 사진과 새 글들, 블로그의 댓글들, 브런치의 새 글을 몇 개 순회하고 나니 이제 정말 몸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다.


아침은 냉장고에 쟁여뒀던 샌드위치와 커피로 먹는다. 책방에서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라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출근하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퇴근하기 때문에 간단히라도 아침을 먹어야 한다. 혼자 먹는 밥이 심심해서 즐겨 듣는 팟캐스트를 틀어본다. 화면을 보면 식사 시간이 하염없이 늦을 수 있으니 주로 귀로만 듣는 콘텐츠를 즐기는 편이다. 본론은 시작하기도 전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다 먹어버렸다. 시간은 금세 9시를 훌쩍 넘겼다. 내가 빨리 먹었다기보다는 팟캐스트의 본론은 언제나 느리게 시작된다. 본론보다는 잡담을 듣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처럼 돌아 돌아 시작하는 속도가 좋다. 느릿느릿 내 속도에 맞춰 씻고 양치하고 옷을 입으니 9시 30분이다.


먼저 출근한 남편에게 카톡을 해보았다.

‘비 와?’

남편은 대답한다.

‘지금은 그쳤나 본데.’


나는 커튼을 열어보지도 않고 남편의 카톡만 믿고 우산 없이 집을 나온다. 아차, 아직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집 앞에 세워둔 차까지 걸어가는 데에는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머리와 안경에는 금세 빗방울이 몇 개 묻어버렸다. 그래도 좋은 날씨다. 며칠 동안 희뿌옇게 미세먼지가 가득했었는데, 비가 내려 미세먼지를 싹 씻어내려 줄 것만 같다. 이제는 꽃샘추위가 완전히 가버렸는지 비가 와도 공기가 차갑지 않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희미한 흙 내음이 섞인 듯한, 봄나물 냉이를 닮은 봄비의 냄새. 며칠 전에 열심히 세차를 해서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막상 비가 내리니 새삼 반갑기도 하다.


차를 타고 출근하느라 봄비를 느낄 시간은 매우 짧다. 작은 빗방울들이 앞유리 위로 토독 토독 떨어져서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얼마간 모이면 와이퍼로 슥… 빠른 속도로 빗방울이 모일 정도는 아니어서 와이퍼는 제일 낮은 속도로 설정해 두었다. 그런 주기를 몇 번 반복하고, 너무나 익숙해진 출근길을 10분 동안 운전하면 나의 직장, 내 서점에 도착한다. 편리한 삶이다. 비 오는 날을 덜 싫어하게 된 건 아마도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가용이 생긴 지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던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비가 오는 날 버스를 타던 기억을 떠올린다. 탑승을 위해 버스 앞에 줄을 서있을 때 우산을 하나하나 접는데, 앞사람이 우산을 함부로 접으면서 뒤에 있던 나에게 물세례를 끼얹던 일. 버스의 바닥이 젖어 신발 바닥이 미끄러웠던 감촉. 비에 젖어 축축한 우산을 손으로 잡아 좁은 의자 밑에 두어야 했던 불편함. 의자에 앉지 못하면 서서 갈 때 우산을 돌돌 말아 한쪽 손에 쥐고 있어야 했는데, 양 옆사람의 우산이 나에게 닿을 때 느꼈던 짜증스러움. 그런 기억들이 스쳐가며, 차 안에서 쾌적하게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비를 즐길 수 있는 것도 특권이구나, 생각했다.  


밤새 비워둔 서점의 공기는 약간 차갑고, 미세하게 종이 냄새가 난다. 쿤달의 꽃 향기가 나는 디퓨저 향과 새 책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종이의 향이 섞여 뿜어내는 내 서점만의 향. 이 공기는 나를 늘 둘러싸고 있지만, 서점 문을 열며 처음으로 숨을 들이마실 때 느껴지는 그 향이 유독 좋다. 그 좋은 향을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나는 아직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했다. 이제 아침에도 기온이 10도가 넘는 봄이라고 난방은 틀어주지 않는 모양이다. 좀 춥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지난달 보다 난방비가 적게 나오겠지. 쌀쌀한 공기에 코가 시려오는데, 봄의 글쓰기 모임 손님들이 한 명, 한 명, 가게 안을 온기로 채운다.


이것은 어제의 나만 아는 봄의 공기와 온도, 봄의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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