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의식적으로 좋아하지 않게 된 건, 내 몹쓸 수족냉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던 때이다. 앉아있기만 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던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활을 할 때. 지금 생각하면 수족냉증이 심해질 수밖에 없던 환경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3학년이 되면 복장에 대한 제한을 거의 풀어준다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학생주임이 바뀌면서 우리들은 예전보다 더욱 철저해진 단속에 시달려야 했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정장 조끼와 재킷, 넥타이, 스커트, 스타킹을 매일매일 교칙에 따라 철저히 입어야 했다. 보통은 스커트 아래에 체육복 바지를 입거나, 스커트 위로 와이셔츠를 빼입거나 조끼나 넥타이 정도는 건너뛰는 것 정도는 묵인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 모든 것을 철저히 단속했다. 심지어 그때는 한 겨울에 패딩을 입지도 못하게 했고, 코트만 입어야 한다고 했었다. 발이 시린데 털실내화도 신지 못하게 해서 스타킹 위에 까만 양말을 신고 그 위에 수면양말까지 덧 신고는 했다. 나는 대체로 교칙에 맞게 잘 입는 편이었는데, 겨울에 스커트 밑에 체육복 바지를 입는 것만큼은 포기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한 번은 선생님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체육복 바지를 입었는데, 그게 또 걸리는 바람에 복도에서 엎드려뻗쳐 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일이 두고두고 억울해서, 잊히지 않았다. 영어 듣기 평가의 여자 성우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울려 퍼지는 동안 엎드려뻗쳐를 해야 했던 나는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한 채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울면 지는 것 같아서 기를 쓰고 눈물을 다시 삼켰다. 솔직히 우리 수능점수의 평균 10점은 그놈의 교복 단속 때문에 깎아먹혔을 것 같다는 억울한 생각이 든다. 추워하는 애들을 ’ 학생은 단정해야 한다 ‘는 핑계로, 또, ‘단정하면 공부가 더 잘된다’ 혹은 ‘조금 추워야 공부가 더 잘된다’는 이상한 소리로 학대했던 선생님의 말에 헛웃음만 나왔었는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코웃음에 비웃음까지 나올 지경이다.
과거 고3 시절의 나는 하루의 절반은 조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머지 절반은 퀭한 눈으로 겨우 겨우 문제집을 풀고 있었고, 심지어 겨울에는 시린 손과 발을 바들바들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손이 너무 시린 나머지 손톱 밑이 보라색으로 푸른색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에 알았다. 나는 아마도 그때부터 수족냉증 때문에 고통스럽기 시작하면 겨울이 왔구나, 한다. 내게 수족냉증이 없었더라면 겨울이 좀 아름답다고 느꼈을까? 겨울을 더 좋아할 수 있었을까? 더 따뜻하게 입어서 손과 발 시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겪을 수 있었다면 수능 성적이 좀 더 잘 나오지 않았을까?
마침 갑자기 추워졌다고 느껴서 이런 글을 쓰고 보니, 수능철이다. 지나고 보면 추억이 될 것이라던 어른들의 말처럼 내게도 수험생활을 했던 때가 추억이 되어 매년 11월 중순만 되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추억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당시 힘들었던 기억은 멀어지고 옅어졌다. 그럼에도 매년 시려오는 손과 발은 그날의 기억을 자꾸 떠올리게 만든다. 그토록 추웠던 겨울의 기억 속에는 늘 열악한 환경이 함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추위가 싫었다. 온돌시설이 없어 바닥이 차가웠던 대학 기숙사, 난방을 아무리 틀어도 외풍이 심해 따뜻해지지 않는 오래된 건물의 원룸, 시멘트 건물의 차가운 벽과 차가운 바닥, 햇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의 사무실. 나를 둘러싸고 있으며, 또 벗어날 수 없었던 차가운 모든 것들이 싫어지는 계절이었다.
겨울마다 내게 수족냉증을 견디는 건 당면한 과제 같은 것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해가 갈수록 겨울을 나는 방법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 지금 나의 겨울은 이제 제법 버틸만하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개인 온열기를 사용하지 못해서 너무 추웠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엔 내 책방에서 온열기구를 내가 원하는 만큼 튼다. 그리고 보온 물 주머니에 따뜻하게 데운 물을 넣어 핫팩이 전해주는 온기를 끌어안고 있으면 어느새 손과 발은 뜨끈해진다. 손님이 없을 때 업무를 보는 자리를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쪽으로 옮긴 것도 꽤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이젠 겨울에 결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다. 따뜻한 음료를 즐길 줄 알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변화다. 집에서는 수면바지와 수면양말을 적극 활용한다. 샤워를 할 때 찬바람이 들어오는 화장실 창은 외풍을 막아줄 수 있도록 비닐로 한동안 막아둔다. 한편으로는 온열기와 난방으로 인해 건조해지는 피부와 눈을 이겨내기 위한 장치도 필요하다. 핸드크림과 바디크림, 세럼, 오일, 수분크림, 립밤을 정말 열심히 바른다. 일할 때는 보이는 곳에 가습기를 틀어둔다. 안구건조증을 예방하기 위한 오메가 3 영양제도 늘 챙겨 먹는다. 찌개나 국 같은 따뜻한 음식도 전보다는 더 열심히 만들어먹는다. 감과 귤로 당을 보충해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전에 없던 지혜가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저 추위에 떨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어서 다행이다. 보다 따뜻하게 지내려는 시도를 두고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공간에 있어서 다행이다.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무언가를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겨서, 전기세와 가스비를 부담하는 데에 크게 무리가 되지 않아서 충분히 춥지 않게 보낼 수가 있다. 그 덕분에 겨울에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사실 나는 추위를 잘 이겨내는 방법을 몰랐다기보다는 버텨야만 하는 처지에 불가피하게 놓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추위를 버티지 않는 대신 이런저런 방식으로 예전 보다는 훨씬 덜 춥게 지낼 수 있게 된 지금은 겨울이 예전보다는 확실히 덜 싫다. 그러나 여전히 겨울의 추운 날씨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더 맨 몸으로 추위를 견뎌야만 했던 과거의 나를 연민하듯, 그들을 생각하게 된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된 지금에 감사하며. 점점 더 추워지는 날씨에 모두 함께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온기를 나누어야겠다. 그게 어쩌면 누구보다도 추위를 가장 잘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둥글게 모여 온기를 나눔으로써 남극의 혹독한 추위를 그 어떤 온열기구 없이 모두가 함께 견뎌내는 황제펭귄의 모습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성탄을 보낼 수 있기를.
덧.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져 찾아보니 작년 겨울에도 비슷한 주제의 글을 썼다는 걸 쓰고 보니 발견했다.
- 추위, 견디고 이겨내고 즐기기(22.12.16 브런치 발행)
이번 글은 발행하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조금 달라진 생각의 흐름이 내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