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가 크거나 작다. 나는 알록달록하거나 단색이다. 나는 펼쳐지거나 접힐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사람들의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다. 아니 비를 맞는 우산이기도 하다. 나 우산이 겪었던 이야기를 해줄게.
'항상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어. 그래야 나를 집어 들고 산책을 해주거든. 눈이 오면 날 챙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 무튼 비가 오는 날에만 친구를 만날 수 있거든.'
방 안의 온도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딱 비가 내리기 전의 온도였어. 그 방 안에는 젊은 남녀가 있었고, 적막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남자는 고심 끝에 용기를 내 말했어.
"우리 만날래?"
여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어. 웃음기 없는 긴장감 속에 남자는 약간 불안한 듯 나를 만지작 거렸어.
10초 남짓의 시간이 마치 1시간 같았고, 여자는 드디어 입을 열었어.
"집에 갈래."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어.
"데려다줄게."
여자의 표정은 미묘하게 웃음을 띄는 얼굴로 바뀌었고, 난 비를 맞으러 밖에 나갈 생각에 기뻤어. 둘은 함께 계단을 내려갔고, 문을 열었어.
여자의 우산은 펼쳐졌고, 내가 펼쳐질 그 행복한 순간에 여자는 말했어.
"우산 한 개면 되잖아. 가자"
남자는 나를 펼치다가 다시 접더니, 어둡던 표정은 금세 행복한 표정으로 바뀌었어. 그러고는 나를 문 앞에 두고는 사라졌어. 그 뒤로 남자를 본 적이 없었어. 나의 존재를 새카맣게 잊고 잘 지내고 있는지, 그 여자와 아직도 만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한참을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비가 오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나를 들고 가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