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취향

너의 취향을 먹고 싶어

by 오구리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니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저 책이 쌓인 도서관에 앉아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째 깍 째 깍

소리가 엄청 느려졌고, 태양은 하늘 높이 멈춰있다. 여자친구가 퇴근을 하려면 무려 4시간 남짓 남았다. 도대체 왜 도서관에서 기다린다고 했을까? 지루한 시간이 될 것 같은 나에게 여자친구는 말했다.

"남는 시간에 책을 읽어!!"

내가 재밌게 읽었던 책은 어릴 적 읽었던 만화 삼국지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책상에 앉아 읽을거리를 찾아보았다. 여러 가지 책 들중 끌리는 것은 없었다. 그냥 앉아서 눈치껏 노래나 듣다가 기다릴 생각을 하고는 이어폰을 꽂고 잡지 한 권을 꺼내 놓고 한 숨 잘 생각이었다. 귓속에 나오는 노래는 데미안 라이스의 'cannonball', 언제부터 있었는지 책상 위 책은 데미안. 그냥 집어 들었다. 이거라도 펼치고 대충 시간이나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시작부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일단은 더 읽어보기로 생각하며 책에 시선을 두었다. 흥미롭지는 않지만,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 인척 글의 서론이 시작되었다. 책을 앞으로 넘겨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였다.

"헤르만 헤세"

많이는 들어봤지만, 잘 모르겠다. 쓸데없는 생각은 치우고, 일단 서론을 읽어봤지만, 뭐 재미는 모르겠고 일단 읽기 시작했다. 어린 싱클레어는 아주 어리석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겨우 첫 번째 쳅터를 읽었을 무렵, 책 속의 포스트잇을 발견하였다. 아주 이쁜 글씨로 쓰여있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해. 조금 더 읽어봐."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제아무리 책을 안 읽는다고 한들 이런 거 가지고 칭찬을 하는 게 우습지만, 일단은 마저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꽤나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았다. 쳅터가 넘어갈 때마다 포스트잇은 계속 있었다.

"아직 포기 안 했어?? 아직도 읽고 있는 거야?"

이제는 놀리는 것도 아니고, 살짝 기분이 나빠질 것만 같았다. 오기 같은 것도 생기는 것 같았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한 지 한 시간 남짓이 흘렀고, 3분의 1의 페이지가 넘어간 만큼 책은 책상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책이 저울이 왼쪽을 향할 때쯤, 하나의 포스트잇이 더 있었다.
"너 책 읽는 모습 꽤 멋있네??!"
누군가 감시하는 기분이 들면서도, 얼굴엔 미소가 피었다. 그리고 책을 자주 읽는 연이가 생각이 났다. 밤마다 전화를 걸었을 때마다, 책을 읽고 있었다고 말했고, 나에게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이야기했었다.

3시간쯤 지났을까? 책상에 붙어 있던 오른쪽 날개가 자꾸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책의 끝자락에 다다른 것이다. 나는 책의 내용보다 포스트잇이 보이기를 바라며 끝을 향해 나아갔다. 책을 다 읽어갈 때쯤, 연이의 취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늘 이야기했었다.

"네가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 너를 좋아하지만, 책 읽는 네가 더 좋을 것 같아."

책을 읽으면서, 나의 취향이었던 그녀에게, 그녀의 취향도 함께 존중해주고 싶던 생각이 들던 찰나에 마지막 포스트잇이 눈 앞에 나타났다. 너무 반가운 기분에 사람이 많은 도서관에서 포스트잇을 크게 읽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독서는 당신의 빈 가슴을 채워줍니다.
책을 읽으면 행복해집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