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의 신혼생활

돈도 없는 주제에 결혼까지 한 대학원생을 위한 최고의 복지!

by 군군댄스


우리 부부는 신혼생활을 학교 기숙사에서 시작했다. 험난한 서울 살이, 부동산 지옥 속에서, 더이상 집을 구할 힘도,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 두 번의 전세 사기 위험 끝에 우리는 나의 대학원생이라는 신분 덕에(드디어 이 신분 덕을 본다) 산 중턱에 있는 5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우당탕탕 자리잡을 수 있었다. 거실 없는 14평 남짓, 방 두 칸으로 구성된,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랜 건물 5층 꼭대기로 매일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지만, 처음으로 모든 것을 우리의 손으로 채운, 서울 속 우리의 외딴 탑 같은 곳이었다.



나름 기혼자들을 위한 '기숙사'라고는 하는데, 요상하게도 이 건물은 학교 안에도, 그렇다고 역 근처에도 있지 않아서 나와 남편은 그 산길을 다니는 유일한 마을 버스 하나에 의존해 열심히도 다녔다. 기숙사 앞 정류장을 기점으로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으로 떠밀리듯 내려갔다. 나 역시 연구실에 꾸역꾸역 출근했다. 그렇게 서로 위 아래로 열심히 각자 헤메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우리 부부는 다시 우리만의 외딴 탑으로 들어와 서로를 껴안을 수 있었다.



산 중턱에 있는 자그마한 단지다보니, 교통도 불편하고, 주변에 슈퍼 하나 없이 고요하지만, 그 덕에 더 잘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금새 퇴근하고 돌아오는 고요한 산길을 사랑하게 되었다. 다소 어둡지만 이따금씩 지나가는 차들 외에는 너무나도 적막한 길이라서, 우리는 아침에 등교하는 작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나름 기혼자 숙소라고 교내 어린이집이 단지 안에 있다), 5층 베란다에서 보이는 나무 위의 새 소리, 그리고 낙엽을 바스락 바스락 밟고 다니는 고양이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기숙사 건물들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산 중턱이라 밤에는 별이 많이 보였다. 우리 부부는 별자리 어플을 깔고, 밤마다 별들을 찾아 헤매었다. 목성이 저녁 하늘에 머리 위에 가장 쉽게 찾을 수 있고, 목성 옆에 빛나는 별의 이름은 카펠라 이고, 약간 노랗게 보이는 불그스름한 화성 위에 반짝이는 두 별은 쌍둥이 자리의 쌍둥이 머리 둘 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같이 손을 잡고 산길을 걸으며 우리는 그 언제보다도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었다.



산에서 내려가다보면 지하철역을 가기 전에 약간의 시내가 있어서, 외딴 탑에서 사는 우리는 이따금씩 그 별천지를 구경하러 갔다. 젊은 친구들이 뭘 하고 노는지, 요즘은 어떤 사진을 찍는게 유행인지, 어떤 메뉴가 인기를 끄는지 두 손 꼭 잡고 우리도 대학생 커플처럼 보이진 않을까? 생각하며 그 짧은 별천지 골목을 심심할 때마다 거닐었다. 때로는 호기심이 드는 가게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전혀 힙하지 않은, 할머니의 사랑방 같은 와인방도 찾았다(그렇다, 그곳의 이름은 '와인방'이었다..!). 그렇게 거리 곳곳에 참견을 하면서, 도파민 충전을 위해 작은 가챠샵을 들어가 만원씩 쓰기도 하고, 때로는 인형뽑기에 몰두했다. 소소하지만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어떤 방송인이 심심해야 좋아하는 걸 찾게 된다고 했던가. 다소 심심한 그곳에서 우리는 가장 좋아하는 서로를 자주 마주 봤다. 손을 잡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했다.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방법을 같이 고민하고, 사부작 사부작 살림도 늘려나갔다. 2년 후, 거주기간이 끝나고 떠날 우리는, 어쩌면 이곳을 많이 그리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5.03.20. 07:20 AM 씀

2025.04.17. 09:30 AM 발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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