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퀸즐랜드 대학의 한달간 테솔 프로그램, 학교 수업은 오전에만 실시되고 오후에는 클럽 활동이나, 야외활동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마지막 주 한주간은 초등학교에서의 교생실습으로 짜여져있다. 호주 학교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1회의 수업을 하게 되어있다. 그 수업은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수업이다. 한 팀으로 구성된 15명의 호주연수팀은 호주에 오기 전 한국문화 수업을 할 재료를 사러 동대문을 갔었다. 수업 아이디어는 여러가지가 나왔다. 장구수업, 전래놀이 체험, 딱지치기, 한국 전래동요 배우기, 한국음식 소개 등등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다양하다. 여러 고민 끝에 나의 픽은 한국전통의상 소개, 그리고 공기놀이이다. 전통의상을 재미있게 소개해보자, 이런 마음에 너무 열정이 과도했나보다. 나는 한국전통의상 종이접기 세트를 구매했다. 그리고 한국인의 소울이 담긴 공기놀이 세트와 함께. 그 화려한 로드맵이 나 혼자만의 꿈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물은 엎지러져 있었다.
배정받은 학교는 브리즈번의 부촌 한가운데, 교실은 초등 3,4학년 복식학급, 학생수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 나라 학교만 빡빡한줄 알았는데, 복식학급 정말 보는 것만 해도 버거워 보인다. 선생님은 3학년 수업자료 따로, 4학년 수업자료 따로 이렇게 항상 준비해 오신다. 교과서라곤 수학과 읽기 밖에 없는데, 나머지 수업자료는 모두 직접 제작해 오신다.
인도, 중국, 페루 등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페루인 야니는 이민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를 못하는데, 이 아이는 테블릿을 보며 개별지도를 받고 있었다.
"선생님은 웨이잉(중국아이)의 엄마에요?"
한 아이가 묻는다.
대체로 아이들 분위기가 차분하지만, 이곳이라고 개구장이가 없는건 아니다. 이름도 잊혀지지 않는 해리(가명)라는 아이, 선생님과 어른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선생님과의 설전과 실갱이는 너무도 익숙한 그들의 일과이다.
책상 서랍안이 정리가 안되있다고 지적받고는 책상정리를 하길래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니 해리는 자기 책상을 꽉 잡는다. 아이는 적극적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ADHD도 아닌 것 같고, 부모의 보살핌이 없는 아이도 아니다. 매일 그의 어머니가 한가한 모습으로 아이를 데리러 오는 것이 맞벌이 가정 같지는 않다. 엄마 말도 전혀 듣지 않아 힘들 것 같기도 하나, 전혀 훈계하지 않는다. 그리스 이민자 집안이라는 그들은 이렇게 아이를 있는 그대로 키우는 것도 양육철학인가 보다.
교과서 없이 스크랩북에 학습자료를 정리한다
호주 학교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교장선생님도 학급 담임을 맡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 자원봉사자가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함께 보조교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복식학급이라 이렇게 보조교사 없이는 아이들 개별지도가 힘들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각자의 도시락을 준비해와서 먹는다. 아이들은 지나치게 소란피우면서 장난하지 않는 모습이 좋다. 서로의 개인영역personal space을 존중해서 그런가 서로 밀치거나 하는 일 없이 온순하게 노는 편이다.
드디어 그날은 왔다. 무엇보다 가장 신경쓰이는건 영어실력이다. 아이들이 선생님 영어가 왜 저래? 이런 말만 안들으면 성공일 것 같다. 나의 수업은 아리랑 배우기 노래로 시작, 반 아이들을 A,B로 나누어 A는 한국전통의상 종이접기, B는 공기놀이를 한다. 그리고 A,B 스위칭!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이런 놀이들을 얼마나 재미있어할까! 두근두근
첫스타트, 아리랑 먼저 듣고 한 소절씩 따라하기. 그런데 아이들이 노래를 따라부르기 어려워한다. 한국어도 어려운 데다, 음정을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전 곡을 따라하려면 하루 종일 수업해도 부족할 것 같다. 그래, 그냥 노래 듣는 걸로 패스, 그러나 시간은 이미 많이 흘러있었다.
"풀과 가위 책상 위에 모두 준비되었나요?"
다음은 오늘의 주요 이벤트 종이접기! 그냥 모양대로 오려내서 선대로 접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모두 종이접기 세트를 들고 몰려왔다.
"너무 어려워요 선생님, 이거 해주세요!"
정신이 어질어질 하다. 나의 원래 계획은 아이들이 종이접기 하는 동안, 공기놀이하는 아이들 틈에 가서 공기놀이를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공기놀이 팀도 그다지 원활하지 않다. 아이들은 공기놀이를 하는게 아니라 공기를 서로 던지기 받기 놀이를 하고 있다.
"선생님! 재 울어요!"
어떤 남자아이가 울고 있다. 그 옆에는 담임선생님이 하하 웃고 계시다. 아이가 종이접기를 가위로 오려내다 하나를 잘못 오려냈다며 울고있었다. 아이들을 접하다보면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남자와 여자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정확히 뒤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업 마칠 시간은 다가오고 드디어 담임 선생님의 수습할 타이밍이 온 것 같다. 선생님은 종이접기 세트를 집으로 보내자고 하신다. 종이 봉투에 종이접기 세트를 하나씩 하나씩 넣어 주고,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오늘의 운세가 좋지 않은것이었던가. 그날 마치고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간 나는 며칠을 두고 이불속에서 하이킥을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호주 아이들은 한국의 전통의상과 공기놀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겠지? 더구나 집으로 가져갔으니 부모들도 구글 검색이라도 해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