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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Feb 02. 2024

물건을 비우다 행운을 만났다

무슨 행운일까요

새벽에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고 나는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오늘 책 정리를 좀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 후 이사를 앞두고 있어 조금씩 정리를 해놓으려던 참이었다. 이번 기회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다시 한번 싹 빼낼 예정이다.


며칠 전에도 책을 몇 권 정리했었는데, 책장을 다시 보니 좀 더 비우고 싶어진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지만 책을 너무 사랑하기에, 책 정리는 나에게 가장 난이도 높은 미션이다. 한 권씩 빼낼 때마다, '또 보고 싶어질 것 같은데'라는 미련이 내 손목을 붙잡는다. 물론 그 모든 미련을 다 떨쳐내고 과감히 버린 후에 괜히 버렸다고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 많던 책들을 줄이고 줄여 현재는 38cm 너비의 책장 4칸에 다 들어갈 정도로만 남겨놓았다. 4칸 중 한 칸은 외국어 학습과 관련된 책들만 있고 나머지 3칸에 일반 책들이 있는데, 내 목표는 일반 책들을 1-2칸 정도 양만 남기고 정리하는 것이다. 전자책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종이책은 정말 아끼는 책들만 남겨둘 생각이다.


그렇게 한 권씩 고심하며 책을 뺐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 손이 잘 안 가서 읽다가 만 책, 남편이 회사에서 받아왔는데 너무 두꺼워서 펴볼 엄두가 나지 않는 책, 읽을 땐 너무 좋았지만 다시 볼 것 같지는 않은 책. 특히 선물 받았거나 추억이 있는 책은 손에서 놓기 어려웠지만, 추억이 밥 먹여주나! 뺄 땐 빼야지요.


엇, 그런데 뭔가 있다.


책장을 후루룩 넘기고 있는데, 학창 시절 책 사이에 끼워놓았던 네잎클로버를 발견했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수줍은 얼굴의 미소~~♪ 네잎클로버 노래 아시는 분..?


맞아, 그랬었지. 이게 이 책에 있었구나. 새삼 반갑다. 모르고 버렸으면 아까울 뻔했다. 코팅도 안 하고 생으로 끼워놨는데 10년 넘게 멀쩡히 있어준 게 고맙다. 조심조심 집어서 내가 아끼는 다른 책 사이에 살포시 끼워놓았다.


네잎클로버를 보다니, 오늘 나에게 행운이 오려나? 이 글 보시는 분들께도 오기를.


책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해본다. 그래도 이제 웬만한 책은 전자책으로 볼 수 있어서 미련이 덜 하다. 다 빼고 보니 14권. 목표한 만큼 많이 빼지는 못 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책을 다 정리하고 보니 갑자기 냉장고에 묵혀있던 것들도 버리고 싶어진다. 진득하니 앉아서 영상 편집 해야 되는데 자꾸 청소가 하고 싶어지는 이 마음은 뭘까. 공부하려고 하면 책상 정리 하고 싶어진다더니. 결국 냉장고 문을 열고, 곳곳에 숨어 있던 유통기한 지난 식재료와 조미료, 식품들을 몽땅 꺼내서 버렸다.


오래된 들기름, 멸치 액젓, 각종 소스, 캔음료 등등. 남아있는 내용물을 다 처리해야 돼서, 냉장고 정리는 버리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마음먹었을 때 바로 하는 게 좋다. 이사 가기 전까지 최대한 냉장고를 비워놓으려 한다. 일명 냉장고 파먹기!


내친김에 서랍도 열고 헤집어본다. 아주 날 잡았다. 안 쓰는 샘플들, 유통기한 지난 선크림, 언제 샀지 싶은 커튼 고리들처럼 쉬운 것 몇 가지만 정리하고 다시 닫았다. 버릴 것들 정하는 것도 은근히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면 같이 중고서점에 가서 깨끗한 책 몇 권을 팔 생각이다. 이걸 핑계로 오늘 저녁은 외식하자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고 생각해 보니, 책 팔면 만 오천 원 정도 받게 되는데 외식하면 최소 3만 원 이상 나온다. 남는 장사는 아닌 것 같지만 오늘 물건들 정리하느라 수고했으니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그리고 여유 있는 저녁을) 선물해도 되겠지.


눈여겨본 식당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스타벅스에 가서 궁금했던 신제품 타로라떼를 맛본다면, 오늘 하루는 비움과 채움이 적절히 조화된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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