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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Mar 11. 2024

똑똑한 남편의 빈틈을 보았다

그게 뭐니 그게

일요일 아침에 책을 읽고 있었다. 몇 분 뒤, 씻고 나온 남편이 옆에 앉아 책상에 휴지를 깔고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오늘 이유를 알았음), 남편은 평소에 손톱 깎을 때 꽤 진지하다.


고개를 돌려 다시 책에 집중하려는데, 손톱이 옆으로 튀었다.


'으그, 다 튄다.'


나는 한번 흘겨보고는, 더듬더듬 잘린 손톱을 찾았다. 그러다 남편을 살짝 쳤다. 남편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어어, 손톱 자를 때 나 건드리면 안 돼."


나참, 그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집중을 하나? 나는 코웃음을 치며 남편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남편이 손톱을 자르는 게 너무 힘들어 보였던 것이다. 낑낑거리는 느낌이었달까. 나는 고개를 남편 쪽으로 기울이며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손톱깎이를 요상하게 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손잡이 앞부분을 바짝 잡고 낑낑대고 있었음


손잡이를 그렇게 잡고 자르면 그게 잘리냐고요. 손잡이 끝부분을 눌러야 쉽게 잘리지, 이 사람아!


"큭큭큭, 오빠, 이거... (손잡이 끝부분을 가리키며) 여기를 눌러서 잘라봐."


"음?"


남편은 내 말을 듣고 엄지 손가락을 손잡이 끝부분으로 옮겨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오, 겁나 쉬워!"


"훨씬 쉽지? 그렇게 잘라 이제..."


"와, 진짜 쉽다. 완전 잘 깎여. 이거 좋은 손톱깎이라고 했는데 왜 잘 안 잘리나 했거든."


네네, 그러셨겠죠.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 편하게 사용하길.


사실 남편은 자타공인 '빅테이터'. 똑똑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이다. 나도 모르는 게 있으면 남편에게 먼저 물어본다. 그런 사람이, 손톱을 저렇게 자르고 있었다니. 역시 빈틈없는 사람은 없었어.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남편보다 아는 게 많지는 않지만 손톱 깎기 고수라서. 서로 보완하면서 잘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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