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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Mar 14. 2024

이사 온 집 '옥에 티'를 해결하다

5,000원의 행복

이사 온 집이 다 좋은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주방에 2구 매립형 하이라이트가 있는데, 큰 화구의 불 조절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약한 불로 해도 화력이 너무 강해 재료를 놓는 족족 다 타버렸다. 내가 잘못 쓰고 있는 건가 싶어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전에 살던 분께 물어보니, '원래 불조절이 안 된다. 그냥 썼다.'라고 답장이 왔다고 한다.


원래 불 조절 안 되는 하이라이트가 어디 있나요. 고장이 난 거겠죠. 내가 아무리 요리 초보 주부라고 해도 작은 화구 하나만 쓰면서 요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A/S를 받으려 했으나 해당 회사가 부도가 난 상태라 고칠 수도 없어 대략 난감. 임대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다른 제품으로 교체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우리가 제품을 찾으면 임대인이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다.


문제는, 우리 집 타공(구멍) 크기에 맞는 매립형 인덕션이나 하이라이트 제품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존에 있는 매립형 하이라이트를 빼고 치수를 재보니 깊이가 너무 얕아 도저히 맞는 제품을 찾을 수 없었다.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이런 문제를 전문적으로 해결해 주는 업체의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전화 상담 후 '프리스탠딩 케이스'를 설치하기로 했다. 우리 집 타공보다 조금 더 큰 스탠딩 케이스를 설치하고, 바로 위에 인덕션을 올리는 방법이다.


스탠딩 케이스의 높이는 7cm. 우리 집 인테리어가 우드&화이트 톤인데, 블랙 색상의 케이스가 주방 상판에서 우뚝 솟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얼른 고쳐서 제대로 요리를 하고 싶었다. (물론 그동안의 외식 찬스는 꿀이었지만!)


며칠 후, 40대로 보이는 남자 두 분이 인덕션을 설치하러 오셨다. 서글서글하니 인상이 좋고 친절한 분들이었다. 두 분은 가져온 물건들을 잽싸게 주방 바닥에 다 풀어놓고, 우리 집 하이라이트를 빼낸 후 구멍 주위를 깨끗하게 닦았다. 나는 종종 질문을 던지며 한쪽 구석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이윽고 한 분이 큰 상자에서 프리스탠딩 케이스를 꺼냈다.


'오오, 저거구만. 꽤 크네. 설치하면 어떠려나.'

기대 반 걱정 반.


다른 한 분이 주방 상판에 스탠딩 케이스를 설치하고 인덕션을 올렸다. (인덕션 때문에 높이가 5mm 정도 더 높아졌다.)


짜잔- 완성.

작업은 금방 끝났다.


그런데...


우려했던 대로였다. 아니, 우려했던 것보다 더 심했다. 설치는 깔끔하게 잘해주셨지만, 옛날 비디오 기기를 연상시키는 길고 네모난 검은 케이스는 우리 집 주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갑.툭.튀.였다.


'헐, 괜히 했다.'


설치된 모습을 보자마자 후회했다. 수고하셨다는 다정한 인사로 두 분을 서둘러 배웅한 뒤, 얼른 주방으로 와서 인덕션을 살펴보았다. 아, 예쁘고 깔끔한 주방이었는데. 이 갑툭튀 까만 아이를 어쩌면 좋나.


매립형일 때가 훨씬 깔끔했는데... 흑


요리 보고 조리 보고, 뒤돌았다가 다시 보고, 옆에서 가자미눈을 해서 보고, 걸어가다 무심한 척 슬쩍 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도저히, 도저히 이 장면이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남편은 드디어 인덕션을 해결했다며 좋아했고, 생김새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으로 보면 괜찮아 보였다.


몇 시간 후 집에 온 남편은 주방을 보더니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오 마이 갓!"


그래, 바로 그 반응이야. 정말 오 마이 갓이야. 남편과 나는 서로의 얼굴과 인덕션을 번갈아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말했다.


"저거 너무 튀어. 어떻게 해?"


"그러게, 진짜 튀네."


남편이 연이어 말했다.


"보다 보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나도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여전히, 인덕션은 눈에 거슬렸다. 아오, 미니멀 인테리어로 예쁘고 깔끔하게 정리해 놨더니만. 주방 상판에 물건을 많이 두지 않아서 검은색 케이스가 더 눈에 띄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인터넷을 찾아보니 애초에 프리스탠딩 케이스를 설치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냥 타공 구멍을 얇은 대리석 판으로 막고, 그 위에 이동할 수 있는 2구짜리 화이트 인덕션을 두고 사용하면 되는 거였는데.


설치해 주신 분께 혹시 교환이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교환은 불가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한 가지. 지금 설치된 스탠딩 케이스와 인덕션을 빼고 우리가 사비로 화이트 인덕션을 사는 것.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주방을 서성거리며 해결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녕 이대로 써야 하는 것인가. 방법이 없다면 예뻐해 줘야지 어쩌겠는가. 애써 그냥 받아들이자고 마음먹고 있던 그때, 컴퓨터를 하고 있던 남편이 소리쳤다.


"우리 이거 붙여볼래? 이 사람은 시트지 붙였는데 괜찮은데?"


시트지!?! 후다다닥 달려가서 보니 우리와 비슷한 사례인 사람이 케이스에 시트지를 붙였는데 훨씬 보기 좋았다.


"오, 해보자 해보자! 이거 하면 더 나을 것 같은데."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주방 상판 색상과 비슷한 아이보리 색의 방염 시트지를 주문했다. 가격도 착하다. 5,000원 정도.


과연 시트지는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나의 희망, 시트지.


결과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둥.







두근두근








과연..!!








과연...!!!!!!!








오오오!!!


티 안 난다!!!


대박. 성공적. 치수에 맞게 시트지를 잘라 붙였는데 훨씬 보기 좋았다. 이제 더 이상 갑툭튀가 아니다. 여전히 솟아있긴 하지만 색깔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그런지 별로 거슬리지 않는다.


다시 예뻐진 나의 주방, 환영해.


단돈 5,000원으로 우리 집 옥에 티를 해결했다. 미션 석세스.


#이번 주 명장면: 시트지 두른 인덕션의 모습~~ 아이,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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