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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Mar 21. 2024

우리 금전수가 달라졌어요

분갈이 체험기

몇 년 전 자취를 시작했을 때, 엄마가 선물로 금전수를 사주셨다. 금전수는 돈과 부를 상징하는 식물로, 집에 두면 돈이 들어온다고 했다. 아쉽게도 금전수는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2년 동안 내 룸메이트 역할을 해주었다.


애지중지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워낙 혼자 잘 자라는 식물이라 특별히 관리해 줄 것이 없었고, 잎들에 먼지가 쌓여있는 채로 방치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나름 '엘리자베스'라는 고급스러운 이름을 붙여주고, 물을 줘야 하는 날을 꼬박꼬박 달력에 기록해 빼먹지 않고 주고, 종종 먼지를 닦아줄 때는 '예쁘다, 고마워, 사랑해'라고 속삭여주었다.


내 진심을 알았는지 금전수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5년째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그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자취방에서 신혼집으로, 그리고 최근에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했다. 금전수는 키가 더 크고 잎사귀가 풍성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화분이 작아 보여, 이사 오면 꼭 분갈이를 해주리라 결심했었다.


줄기 하나가 유독 길게 자라는 중... 키 맞춰서 자라줘잉


귀여운 새싹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어제 남편과 꽃집에 가서 분갈이를 하고 왔다. 화분은 미리 사갔다. 원래 토분을 사려고 하다가 유튜브를 보니 화분 재질보다 물 배출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밑에 물구멍이 많이 뚫려있는 플라스틱 화분을 사갔는데, 꽃집 사장님이 토분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했다. (플라스틱 화분 반품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포장지 안 뜯은 나 칭찬해!)


꽃집 사장님은 50대로 보이는 여자분으로, 아담한 키에 커트 머리가 잘 어울리는 다정한 분이셨다. 분갈이할 때 금전수가 다치지 않을지 조금 걱정이 됐었는데, 사장님을 보니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싶었다.


"어머~~ 금전수가 잘 자랐네요. 몇 년 키우셨어요?"


바닥에 신문지를 깔며 사장님이 물어보셨다.


"4년이요!"


"잘 키우셨다."


"헤헤, 감사합니다."


"근데 금전수는 뿌리 뽑는 게 정말 힘들어요. 이것도 뽑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럴 것 같아요. 너무 빽빽하죠?"


사장님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금전수 화분을 이리저리 눕혀보셨다. 금전수는 뿌리 끝에 물을 저장하는 감자 모양의 알이 있는 '알뿌리'를 가진 식물이라, 빼내기 어렵다고 했다. 심지어 화분도 단단한 사기 화분. 사장님이 열심히 손으로 흙을 파내셨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어려우시면, 그 화분 깨도 돼요."


사장님이 화들짝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이거 깨도 돼요? 안 쓰시는 거예요?"


"네, 안 쓸 거예요. 빼기 어려우실 것 같아서... 깨면 빼기 더 쉽죠?"


"훨씬 쉽죠. 그럼 깨도 될까요?"


그렇게 해서 기존 사기 화분을 깨기로 했다. 사장님이 작은 망치로 화분 옆을 탕탕! 몇 번 두드리자 화분이 쪼개지며 흙이 흘러나왔다. 윽, 마음 아파. 화분에도 정들었는데. 원래 물건을 버릴 때 인사를 하고 버리는 것이 습관인데, 이 화분과는 미리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나는 급하게 몸을 숙이고 깨진 화분에 손을 갖다 대며 '고마웠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사장님은 내 말을 들으셨는지 '어머, 착하셔. 아끼면서 키우셨나 보다.'라고 말해주셨다. '허허허.' 쑥스러워서 어색한 웃음으로 답했다.


체험 삶의 현장... 이 아니고 생생한 분갈이 현장


빼낸 금전수를 보니 뿌리가 화분 모양대로 똘똘 말려있었는데, 그 뿌리 밑부분에, 세상에, 스티로폼이 잔뜩 껴있었다. 파는 사람이 화분을 더 비싸게 팔기 위해 스티로폼으로 식물 높이를 높인 것이다. 사장님은 혀를 차며 스티로폼을 다 떼어내셨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새싹 피우며 그렇게 잘 자라준거야? 기특한 엘리자베스. 이제 새 집에서 발 뻗고, 아니 뿌리 뻗고 편하게 지내렴.


새 집으로 이사 완료!


사장님은 능숙한 솜씨로 금전수를 조심조심 옮겨 심으셨다. 덕분에 30분 만에 분갈이가 끝났다. 화분이 살짝 큰 듯 하지만 우리 집 분위기랑 어울릴 것 같아서 만족 만족.


"와, 감사합니다. 너무 예뻐요. 바닥... 치우려면 고생하시겠어요."


"아니에요~~ 그게 제 일인데요. 자주 오세요!"


쏘 스윗. 사장님은 혹시 필요하면 나중에 흙을 좀 더 주겠다고 말씀하시며 꽃 몇 송이를 손에 쥐어주셨다. '버터플라이'라는 꽃이라고 한다. 잎이 빤딱빤딱하니 실크 같은 느낌! 너무 예쁘다. 얼른 집에 가서 화병에 꽂아야지.


실제로는 코스모스 크기인데 왕꽃처럼 나왔네;;


버터플라이 꽃말을 찾아보니 '당신의 매력에 빠져버렸습니다'라고 한다. 나는 사장님의 인정에 빠져버렸다. 허우적허우적.


우리 집 인테리어에 잘 어울리는 색감이쥬?


짜잔. 주황색 토분에 담긴 금전수가 우리 집 거실 구석을 밝혀주는 중. 분갈이할 때 고생해서 몸살 나지 않았길 바라며. 앞으로도 나의 반려식물로서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주렴. 그리고 너의 명성에 걸맞게 돈도 많이 많이... Okay?


#이번 주 명장면: 주황색 토분에 예쁘게 자리 잡은 금전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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