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존감을 높이려고 애쓰지 않는 이유
유튜브를 하다 보면 자존감과 관련된 영상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라든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특징 같은 것들 말이다. 내 채널에 마음과 관련된 영상들이 많아서인지 자존감에 대한 댓글도 꽤 달린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존감'인데, 생각해 보면 나는 자존감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자존감이 낮지?’라는 고민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내가 언제나 파워 당당 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소심해서 상처도 잘 받았고, 자신감 없을 때도 많았다. 발표 울렁증까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문제를 자존감과 연결시키지 않았다. 자존감이 높은지 낮은지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생각하기 귀찮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존감을 결정하는 기준이 뭘까?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고 낮음’의 잣대를 두고 자신은 어디쯤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생각의 틀을 A라고 해보자.
A라는 생각의 틀 안에서는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 일단 기준이 있어야 높고 낮음을 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했을 때 여기서의 기준은, 보통은 타인이다. 즉, ‘내가 아는 누군가’이다. 특히 나에게 없는 성향을 가진,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성격을 가진 누군가가 나의 자존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보통은 나보다 좀 더 외향적이고 자기표현을 잘하는 것 같은 사람을 봤을 때, 내 자존감이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자존감이 낮아서 고민인 사람이라면, 아마 머릿속에 그 기준에 해당하는 타인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연예인일 수도, 유튜버일 수도, 친구나 지인일 수도 있다.
예전에 유튜브 커뮤니티에 혼자 밥 먹는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한 구독자 분께서 ‘자존감이 잘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고 댓글을 남겨주셨다. 혼밥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타인의 눈을 덜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이, 혼밥을 어색해하는 사람에게는 '자존감이 높다'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혼밥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발표를 잘하는 사람, 당당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 화려하고 개성 있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봤을 때, 내가 그렇지 못하다면 자존감이 낮다고 느껴진다. 자존감의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게 아닐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누구인가?
예전에 친구 두 명과 함께 있었을 때의 일이다. L양이 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얘 보면 부러워.” 그러자 옆에 있던 P양이 인상을 찌푸리며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부러워?” 나는 L양의 말을 듣고 놀라던 와중에 P양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다.
자, 이 상황에서 자존감이 가장 낮은 사람은 누구인가? 친구를 부러워하던 L양인가? 아니면 칭찬을 못마땅해하던 P양인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던 나인가?
그렇다면 자존감이 제일 높은 사람은 누구인가? 솔직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던 L양인가? 친구를 부러워하지 않는 P양인가? 기분은 나빴지만 웃어넘겼던 나인가?
애매하다.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성격이 다 다르고 각자의 개성이 있다. 이런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기준으로 자존감을 자꾸 확인하려고 하면 절대 만족할 수 없다. 언제나 나보다 외모적으로나 성격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보는 패러다임을 바꾸다.
이런 이유로, 자존감을 ‘높고 낮음’의 잣대로 판단하는 생각의 틀 A는 나에게 전혀 매력적이지가 않았다.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대로 A를 버리고, 새로운 생각의 틀 B를 장착해 버렸다. B에서는 이것이 핵심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내가 끝까지 내 행복을 지킬 자신이 있는가? 없는가?”
여기에 어떤 타인에 대한 이미지나 기준은 없다. 그냥 나만 들여다보고 답을 찾으면 끝인 것이다. 저 질문에 내가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이 게임은 끝난 것이다. 더 이상 자존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 행복을 지킬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혼밥을 못하든 발표를 못하든 말을 못 하든 전혀 상관이 없다. 내 자존감은 충만하고, 그걸로 끝이다. 나는 나에게 항상 이런 질문만 던졌었고, 그 대답은 항상 YES였기 때문에 더 이상 내 자존감을 확인하려고 하거나 고민하지 않았다. 자존감을 보는 패러다임을 내 마음대로 바꾸고 편하게 살았다.
자존감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다.
절대평가는 다른 사람이 어떻든지 간에 내가 잘하면 고득점을 받는 것이다. 자존감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를 사랑으로 꽉 채울 수만 있다면 100점 받고 끝인 게임이다. 얼마나 자유로운가. 혹시 이런 질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저는 저만 들여다본다고 해도 만족스럽지가 않아요. 나를 사랑하고 아끼느냐는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지 못할 것 같은데 어쩌죠?”
나 역시 나의 부족한 부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다. 앞으로 개선할 부분도 많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어쨌든 나는 나로 태어났고, 지금의 나로 일생을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 그렇다면 그냥 받아들이고 이 삶을 즐기는 게 낫지 않을까?'
부족한 점만 생각하면서 평생을 안달복달하면서 살 수도 있고, 나를 인정하고 좋은 생각만 하면서 즐겁게 살 수도 있다. 이것이 오롯이 나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면, 나는 내가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그걸 인정하고 개선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을 택할 것이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 기간 동안 내가 나를 괴롭히면서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주어진 이 삶을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자존감을 가득 채우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