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것이 수련이 아니라, 집중하고 싶은 것을 정하는 것이 수련이다
인도 리시케시. 요가 지도자 과정 중에 브라흐마차리야에 대한 철학 수업을 들었다. 금욕의 의미, 에너지의 보존, 성적 에너지와 수련의 관계. 수업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거의 1년간 유지해온 금욕 수련을 깨면, 정말 내일 아침에 뭐가 다르게 느껴질까?
호기심이 실험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brahmacarya-pratiṣṭhāyāṃ vīrya-lābhaḥ
브라흐마차리야에 확고히 자리 잡으면, 활력을 얻는다. — 요가수트라 2.38
브라흐마차리야. 이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금욕이다. 그리고 금욕이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노섹스. 포유류 세계에서 가장 큰 욕구라 여겨지기에 그런 것이리라.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혼자 수련을 시작할 때, 나는 브라흐마차리야를 금욕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참았다. 그리고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확보되었고, 그만큼 명상에 더 오래 앉을 수 있었다.
1년간 참았고, 깨뜨렸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갔다.
참아서 좋아진 것은 분명히 있었다. 시간과 에너지가 확보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금욕 자체의 힘이 아니었다. 확보된 시간과 에너지를 수련에 쏟았기 때문에 좋아진 것이었다.
핵심은 '참는 것'이 아니라, '참아서 아낀 에너지를 어디에 쓰느냐'였다.
방향이 뒤집혔다.
전통적 해석은 이렇다. 욕구를 참아라, 그러면 수련이 깊어진다. 하지만 내 경험에서 온 해석은 달랐다. 집중하고 싶은 것을 정하라, 그러면 나머지를 참을 이유가 생긴다.
순서가 다르다. 출발점이 다르다.
금욕을 수련의 이름으로 이해하면, 금욕을 깨뜨리는 순간 실패가 된다. '나는 수련에 실패했다.' '의지가 약하다.' 그리고 그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집중으로 이해하면, 실패라는 개념이 사라진다. 오늘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갔다면, 내일 다시 집중하면 된다. 방향을 잡고 있는 한, 가끔 벗어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다.
지금 내게는 이 책을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지만 나중에 본다. 글을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것이 브라흐마차리야다. 금욕이 아니라 에너지의 선택적 집중.
매트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사 자세에 서 있을 때, 타들어가는 허벅지에 정신이 팔리면 호흡을 놓친다. 시선이 옆 사람에게로 가면 자기 정렬을 잃는다. 매트 위의 수련도 결국 에너지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매트를 말고 나면, 그 에너지의 방향이 더 자주 흩어진다. SNS를 보는 시간, 불필요한 약속, 습관적으로 하는 행위, 끊임없이 확인하는 알림. 에너지가 사방으로 새고 있는데, 왜 활력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요가수트라 2.38이 말하는 "활력을 얻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물줄기가 사방으로 퍼지면 힘이 없지만, 한 줄기로 모이면 바위도 뚫는다.
해보시라.
이번 주, 당신의 에너지가 가장 많이 새는 곳 하나만 찾아보시라. 그리고 일주일간 멈춰보시라. 완전히 끊으라는 게 아니다. 일주일만.
그리고 관찰하시라. 아끼게 된 에너지가 어디로 가는지. 그것이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주는지.
브라흐마차리야는 참는 것이 아니다. 집중하고 싶은 곳에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다. 그 시작은, 지금 에너지가 어디로 새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