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18 집중 대상에 따른 명상의 상태
1장 17절
하나의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얻어지는 삼매에는
집중하고 있는 대상의 이름과 형태와 질과 그런 것을 아는 앎이
따라 떨어져 분별되고 대상의 내적인 본질을 통찰하는 관조와
평안한 기쁨과 순수한 자아의식이 동반된다.
1장 18절
의식 속에 대상에 대한 생각은 털끝만큼도 남아 있지 않고
오직 불에 탄 씨앗처럼 잠재 인상만이 남아있는 상태인
또 다른 삼매가 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주시하는 훈련을 거듭할 때 이러한 삼매에 도달한다.
요가수트라 by 파탄잘리, 한국어 번역 unknown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되면 흔히 만날 수 있는 표현인 삼매, 즉 유상 삼매와 무상삼매에 대한 구절인데,
두 상태를 쉽게 말해보자면,
잠시 눈을 감고 앉아서 명상을 한다고 할 때,
어떠한 대상(호흡, 생각, 감각 등)을 정해놓고 바라보기 시작하여 완전한 집중된 상태에 머물 때를 유상 삼매,
대상을 떠나 바라보는, 혹은 집중하고 있는 '의식' 자체로 머물 때를 무상삼매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무언가에 완벽히 몰입되어 있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따금씩 명상을 하는 이들로부터 삼매에 대해 많은 의견들을 들을 수 있는데,
대부분은 삼매라는 상태에 대한 찬사, 갈망, 집착을 엿볼 수 있다.
삼매가 무언가 굉장히 신비로운 상태이고, 도달하기 어려운 상태이므로 아주 깊은 수련/수행이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상태는 살면서 누구나 이미 겪어본 상태이기 때문이다.
바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순간들 말이다.
다만,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요가 수련 혹은 어떠한 영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단지 그 순간들을 알아차리는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가, 또는 여러 영적 전통 등에서 삼매를 위한 수련 방법은 이것이다.
"그대가 하고 있는 그것을 늘 주시하라."
그것이 눈을 감고 앉아서 하는 좌선 명상이던, 매트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아사나 수련이던, 이렇게 키보드 자판을 하나하나씩 누르고 있는 순간이던, 글자 하나하나를 읽고 있는 순간이던 말이다.
그리고 참고로 삼매에 대한 고집이나 집착은 주의하자.
삼매의 경험 여부는 깨달음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저 수많은 경험들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삼매에 대한 경험이 독이 될 여지가 더 많을 수 있는데,
그것은 '나 이렇게 명상을 잘 한다!', 혹은
'드디어 요가의 완성을 이루었다!' 등,
이렇게 에고를 강화시키는 판단과 자만심을 키우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가 어떠한 경험을 하고 있던, 그것에 온전히 의식을 집중하고 있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요가 수련이자, 삼매에 들어있는 상태이고,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