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당선 소식을 듣고
캐톡, 하고 알림이 울렸다. 아빠였다.
"엄마 신인상 확정!"
엄마가 '시인'으로서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최근 시 쓰는 일에 매우 몰두했다. 몇 달에 한 번 친정에 가면 문예창작반 교수님께 'Ok'를 받았다며 탈고한 새 작품을 보여주곤 했다. 어떤 작품은 내 마음에도 찐하게 박혔고, 어떤 작품은 "내 취향은 아니야."라며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시의 시옷자도 모르는 내 눈에도 엄마의 시가 점차 자라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여러 번 곱씹어봐도 언젠가 엄마의 시를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올해가 가기 전에 공모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메일은 보낼 수 있지만 파일 첨부를 할 줄 모르는 엄마를 대신해 아빠가 작품 제출을 도우며, 그렇게 엄마의 시는 하나 둘 세상 밖으로 나갔다. 공모전에 작품을 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고대하지는 않았었다. 엄마의 시는 물론 좋았으나, 아직은 노심초사 결과 발표를 기다릴 만큼의 지점에 와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도전을 완수했다는 것과 엄마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글을 어필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신인상 확정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보기 좋게 빗나간' 예상이 아닌가.
엄마는 한 월간 문학지의 신인상 공모에서 당선됐다. 무려 '등단'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둔 것이다. 정식으로 시를 배우고 쓴 지 5년쯤 되는 엄마에게 진짜로 '문단 진출'의 길이 열려버렸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엄마는 몇 번을 생각해도 이게 사실인가 싶어 당선됐다는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세 명의 수상자 가운데 당당히 엄마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캡처한 사진도 아니고, 엄마가 모니터를 그대로 사진 찍어 보내준 직직거리는 화면을, 나 역시
읽고 또 읽었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전 글에도 썼듯이 최근 나는 엄마의 옛날 일기장을 읽고 있었다. 엄마의 신혼 때, 내가 태어나기 전후의 일들이니 30여 년 전이다. 이곳에 쓰인 글들을 읽으며 나의 짐작보다 훨씬 암담했던 엄마의 청춘과 슬픔과 외로움을 알게 돼 적잖이 마음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엄마가 매일같이 글을 쓰며 고단한 현실을 이겨냈다는 것에 어떠한 감동을 느꼈고, 지금껏 단정하게 글을 쓰고 있는 엄마가 대단스러웠다. 빛바랜 일기장 속 이 구절이 오늘 다시금 떠올랐다.
"내가 책을 읽고 무엇인가 끄적거려보려 애쓰는 모습을 그이는 좋아한다. 유일한 후원자이고 유일한 평론가이기도 하다. 언제쯤 어느 지면에 이 졸필이 발표되어 그이가 가장 기뻐해 줄 그때를, 힘들고 힘이 들어도 가끔 그려보며 산다."
누군가는 비교적 빠르게 이룬 쾌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30여 년 간, 아니 어쩌면 60년 평생을 장독처럼 묻어뒀던 꿈이 이제야 지친 고개를 내미는 것임을.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도 왈칵 눈물을 쏟았다. 불과 얼마 전이었다면 그저 기쁨과 축하의 눈물이었겠지만, 엄마의 과거가 선연한 지금은 복잡한 장면들이 그 속에 담겨 흘러내렸다. 허둥지둥하던 어린 날의 엄마, 삽시간에 흘러버린 세월, 사진 속에서 봤던 고운 얼굴의 엄마와 지금의 작은 등. 모든 것이 변하는 동안 단 한 가지 제자리를 지켰던 것은 글에 대한 엄마의 열정과 염원이었다.
기어이, 마침내, 끝끝내 가고 싶은 길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엄마를 너무나도 축하한다. 이런 기쁜 날을 누구보다 함께 기다렸을 아빠도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