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위징, 명재상의 계보를 잇다!

역사 이야기

by 오세일

618년, 수공제로부터 양위 받아 당나라를 창업한 당고조 이연은 장자 이건성을 태자에 봉합니다. 사실상 건국을 주도했던 차자 이세민은 제위를 놓고 이건성과 죽이거나 죽어야 하는 갈등을 겪습니다. ‘현무문의 변’을 일으킨 이세민이 형과 동생, 조카들을 죽이고 제위에 올라 당태종이 됩니다.


644년,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 안시성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오던 이세민은 한 무덤가를 지나며 탄식합니다.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어떻게든 고구려 원정을 막았을 텐데!”


피 묻은 제위에 오른 당태종이 중국 역사상 모든 통치의 모범이 되는 ‘정관의 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 역량에 더해 위징과 같은 바른말 하는 신하를 가까이 두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위징은 수당교체기의 군벌 중 하나였던 이밀의 수하로 이밀과 함께 당에 투항한 후 태자 이건성의 사람이 됩니다. 태자에게 이세민을 죽이라고 여러 차례 조언한 위징은 ‘현무문의 변’으로 권력을 잡은 이세민에게 형제간을 이간시킨 죄가 크다고 문책당하자 “주군을 위한 충언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항거합니다. 죽음 앞에서 당당한 위징에 매료된 이세민이 위징을 중용합니다.


위징은 훗날 관중, 안영, 공명의 계보를 잇는 명재상이 됩니다. 황제는 위징이 잘못을 지적하고 망신 줄 때마다 “꼬투리만 잡으면 죽이고야 말겠다.”고 격분하면서도 올곧은 충언을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하고 자신의 행동거지를 바로 합니다. 황제가 위징의 충언을 수용하자 간언하는 신하들이 많아집니다. 황당한 내용을 상소하는 자들도 있어 당태종이 이들을 벌하려 하자 위징이 말합니다.


“올바른 상소는 나라에 득이 되나 틀린 상소라 할지라도 나라에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언로가 열려 있어야 나라에 득이 됩니다. 옛 성군들은 항상 언로를 열어 정치에 반영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황제가 상소를 올리는 모든 신하를 격려합니다.


황제가 대신들에게 알리지 않고 황궁의 문을 증축합니다. 승상 방현령이 현장을 지나다 책임자를 불러 공사 내용을 보고받은 일이 있습니다. 다음날 황제가 승상에게 직무와 관련 없는 일을 했다고 질책하자 승상이 사죄합니다. 위징이 말합니다. “황제께서 무엇을 질책하는지, 승상이 무엇을 사죄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승상은 공사가 합당하면 지원하고, 부당하면 중지시킬 권한이 있습니다.” 황제가 깨닫고 공사를 멈춥니다.

미모와 지혜를 겸비했다고 전해지는 장손황후, 황제가 위징의 직언에 화가나 이놈을 죽여 버리겠다고 투덜대자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君明臣直)고 했습니다. 위징이 곧은 것을 보니 폐하의 밝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하드립니다.”라는 말로 황제를 깨우치기도 했던 그녀가 죽자 소릉에 있는 무덤을 볼 수 있게 높은 누각을 짓습니다. 어느 날 위징과 함께 누각에 오른 황제가 소릉을 가리키자 위징이 잘 안 보인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황제가 재차 가리키자 위징은 “아! 소릉요? 소릉은 잘 보입니다.” 위징의 행동은 부인의 묘소를 부모의 묘소보다 중히 여기는 황제에 대한 질책이었습니다. 위징의 행동을 뒤늦게 깨달은 황제가 누각을 부숩니다.


한없이 불쾌하고 불편하게 하면서도 그의 직언이 정도를 벗어난 일이 없었기에 황제는 그가 했다는 이 백여 차례의 직언을 대부분 수용했다고 합니다. 위징 말년에 태자인 건승으로 인해 파가 갈리고 민심이 동요되자 황제는 위징을 태자의 스승으로 임명합니다. 위징이 늙고 병듦을 이유로 고사하자 황제가 말합니다. “그대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오.” 위징이 태자의 스승이 되자 태자에 대한 동요와 민심이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습니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통치에 대해 묻는 황제에게 위징이 했다는 말입니다.


“내겐 세 개의 거울이 있다. 청동 거울로 의관을 바로잡고, 역사 거울로 흥망성쇠를 알 수 있고, 사람 거울로 세상의 이치와 이해득실을 알 수 있다. 위징이 죽었으니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다.”


위징 같은 신하가 아무리 차고 넘쳐도 군주가 귀를 닫으면 무용지물이겠지요. 현군과 현신, 어진 신하를 얻어 귀를 열면 가능한 일이지만,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안영, 제를 선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