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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Jan 16. 2023

탈 트라우마, 물랑루즈 관람기

사람 이야기

   


아주 오래전, 싸이 공연을 보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강남스타일 이전의 일입니다. 올림픽 공원에 도착해 집사람과 아이들을 내려주고 차에 남으려 했으나 거센 항의에 굴복해 끌려 들어갔습니다. 싸이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공연장 분위기에 동화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역시나 우려는 현실이 됩니다. 공연 중반에 이르니 관객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가수와 일체가 되어 떼창 하며 춤추는 광란(?)의 상태가 되더군요. 아마도 제가 그 수많은 사람 중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한 유일한 등신이었을 겁니다. 이질감을 견디지 못해 조용히 빠져나오면서 싸이의 음악에 제 몸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봤지만, 그날의 사건은 트라우마로 남아 꽤 오랜 시간 저를 괴롭혔습니다. 세상 모자란 놈.     


며칠 전, 물랑루즈를 봤습니다. 개인적으론 최근 본 공연 중에 뮤지컬로는 최고였습니다. 그냥 좋았던 게 아니라 엔딩에서 제 몸이 반응하는 걸 느꼈습니다. 다들 기립박수 분위기이기도 했지만, 저 또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격한 박수로 배우들의 열연에 화답했습니다. 어쩌면, 싸이의 음악에 제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는 변명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이젠 오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도 되겠다는 치유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기립’이었고 ‘박수’였습니다.     


“즐길 준비 됐나요?” 하는 공연 한 번 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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