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세일 May 17. 2023

김원봉의 조국

역사 이야기

960년, 조광윤이 후주의 공제로부터 선양 받아 송나라를 창업하고 태조가 됩니다. 태조의 동생 조광의가 제위를 이어 태종이 됩니다. 태종은 당나라 멸망 후 반세기를 이어오던 오대십국이라는 혼돈의 시기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합니다. 1127년, 거란족의 나라 요를 멸망시킨 여진족의 나라 금이 송나라를 공격해 황제를 포로로 잡아가는 정강의 변이 일어납니다. 송나라의 남은 세력은 중원의 대부분을 잃고 양자강을 기반으로 송나라를 이어갑니다. 이전을 북송, 이후를 남송이라 부르며 구분합니다. 금과 송은 끝없이 반목하나 서로를 압도하지 못합니다. 이때 북쪽에서 몽골이 발흥합니다. 1234년, 몽골이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송나라를 압박합니다. 1276년 남송의 수도 임안이 원나라에 함락되며 남송의 운명도 끝이 납니다. 그러나 송나라의 잔존 세력은 새로운 황제를 세워 원나라에 대한 항쟁을 이어가다 1279년 애산전투의 패배로 몽골제국이 세운 원나라에 복속됩니다.


애산전투는 동로마제국의 마지막인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과 비교될 정도로 장엄하고 비장합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서방세계의 지원이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의 홍콩 인근에 있는 애산에서는 20만 명의 남송 의병이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꽃이 되어 송나라의 최후를 함께합니다. 승상 육수부는 어린 황제를 업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함으로써 300년 이어온 송나라를 마무리합니다.


남송의 관료이자 시인인 문천상은 애산전투 이전에 원과 싸우다 포로가 돼 북경으로 압송됩니다. 칭기스칸의 손자이자 원나라 창업자인 세조가 그의 재능을 아껴 전향을 요구하지만, 완강히 거부합니다. 그런데도 원세조는 문천상을 감옥에 가둔 채 5년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문천상의 존재가 송나라 부흥운동의 동력이 된다는 신하들의 주장에 밀려 결국 사형을 집행합니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우리 역사에도 있습니다. 1009년 고려,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세운 강조가 주인공입니다. 고려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거란족의 요나라가 강조의 정변을 빌미로 2차 여요전쟁을 일으킵니다. 강조가 군권을 쥐고 요와 싸우지만, 부하인 이현운과 함께 포로로 잡힙니다. 요나라 성종이 강조의 포박을 풀며 신하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난 고려사람이다. 왜 너의 신하가 되겠는가!” 너(汝)라는 표현을 쓴 강조의 답변입니다. 이현운이 요성종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강조는 고려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냐며 발로 찹니다. 요성종이 강조의 살을 도려내며 복종을 강요하지만, 강조는 죽음으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킵니다.


누군가에게 조국이란 사적 이익을 위해 언제든 외면할 수 있는 무의미한 가치이고 또 누군가에겐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절대 가치입니다. 이민족의 지배에 대한 한족의 자존감이었을까요? 원나라에 대한 지배층의 농성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피지배층으로 척박한 민초의 삶을 살아야 했던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던지며 지키고자 했던 송의 가치는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비록 혼군이었다 하더라도 군주 시해라는 당대 최고의 불충을 저지른 강조, 그러나 고려에 대해서만은 진심이었던 강조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이 떠돌다 일생을 들어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의열단장 김원봉에 닿습니다.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에서 악독했던 친일반민족 형사 노덕술에게 체포돼 뺨을 맞던 순간 김원봉에게 조국은 어떠했을까요? 생각이 많이 엇나갔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모호한 나이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