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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민 Oct 28. 2020

비행

소란한 밤이다. 붉은 가을의 풍경이 펼쳐진다. 바람이 선선하고, 하늘이 더없이 높은 날이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오늘은, 하늘을 날 수 있다. 나는 언덕을 올라갔다가 뛰어내려오기를 반복한다. 발을 구르고 양 팔을 퍼덕인다.


나는 하늘을 날 수 있다. 비행기나 독수리처럼 공중에 머물 수 있다는 말이다. 하늘을 날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큰 충족감을 주는지 몰랐다. 또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이 어떤 불행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공기 중으로 몸이 떠오르면, 머리칼 한 올 한 올까지 전해지는 성취, 이기지 못할 것이 없다는 믿음이 솟는다. 그래서인지 하늘을 나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다. 딱 한 번이라도 비행을 하면, 절대로 그 느낌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사람의 의무는 아니지만, 나는 날지 않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친구 K는 하늘을 날지 않는다. 그는 SUV를 타고 다닌다. 라이더 재킷과 에나멜 바지를 입고 높은 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또한 날아다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가끔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나눌 뿐이다. 


하늘을 나는 것,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었다. 누구나 날고자 하면 날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날고자 한다면, 그때부터는 날지 않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으로 날아오른다. 떠오른 후에는 비슷한 모양새로 하늘을 유영하지만, 그 과정은 모두가 다르다. 동생 주헌이는 한 번에 날아오른다. 처음 시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애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얼마간 추락하지만, 곧 그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에는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주헌이는 겁도 없이 절벽에서 다이빙한다. 나는 그에 비해 쉽게 떠오르는 타입이 아니다. 오랜 시간 노력해야만 날 수 있다. 하루 온종일이 걸릴 때도 있다.


보통은 언덕이나 적당한 건물을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너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자칫 죽을 수도 있다. 늘 실패할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날고 싶은 것이지, 죽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비행의 의미이다. 나는 반나절에서 하루 온종일을 '언제 날아오를까'라는 설렘 속에 보낸다. 아파트 건물 2층 정도의 높이에, 달릴 공간이 충분한 곳이면 적당하다. 나는 떠오르기 위해 달려야 한다. 땀이 흘러내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야 한다. 점점 보폭이 넓어지고, 몸이 가벼워진다. 날 수 있을 것만 같을 때, 팔을 활짝 벌린다. 마치 새처럼. 마치 날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나는 계속 달린다. 뛰어내릴 수밖에 없을 때까지, 의심하지 않고 달린다. 떨어져도 괜찮다. 죽을 높이가 아니니까.


한 번에 날아오른 적은 이제껏 없다. 하지만 끝내 날지 못한 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나긴 비행준비가 부끄럽지 않다. 온 다리에 멍이 들고 여기저기가 까져서 피가 날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영광스럽다.


하지만 하루가 저물고, 먼저 떠오른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되면,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나는 법을 잊은 걸까? 영영 적응되지 않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나는, 날아오른다. 발이 땅에서 살짝 떨어지는 순간, 그때부터 나는 하늘의 사람이다.



몸을 앞으로 누위고, 바람을 탄다. 공기가 배를 가득 채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에서 내 몸을 불편하게 하는 그 무엇도 없다. 나는 자유를 넘어선 황홀을 느낀다. 군데군데 날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도 나와 같이 행복해 보인다. 이렇게 있으면 각각의 아주 다른 인생일지라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들 중에는 나처럼 너덜너덜한 이가 있는 반면, 주헌이처럼 매우 솜씨 좋게 날아올라, 멀끔한 이도 있다. 나는 전혀 불만이 없다. 하늘에 떠 있는 한, 이 기분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가끔 땅에서 그리운 얼굴들을 찾아낸다. 걷다가는 마주칠 수 없는 옛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금방 그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민다. 우리는 손을 맞잡은 채로, 잠시 함께 난다. 나의 가벼운 자유가 한 사람을 공중에 띄운다. 우리는 분홍이 된 구름 사이를 비행한다. 그가 말한다. 잘 들리지 않지만 나는 벅차오른다.


"들었어?"


"응? 뭐라고?"


"우리가 하늘을 날고 있다고!"


나는 그의 손을 잡을 수 있어서 기쁘다. 나의 비행을 함께 하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금방 그를 내려놓는다. 그도 곧 그의 비행을 할 것이다.


언젠가 매일같이 도전해서 매일같이 하늘에 살았던 때가 있었다. 비행은 하면 할수록 낭만 그 자체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회가 점점 줄었다. 가끔 비행에 대해 생각할 때면 무척이나 애틋하다. 마지막 비행은 3년 전으로, 그것도 1년 2개월 만에 기회가 온 것이었다. 여전히 참 좋았다. 바람과 자유와 감당하기 어려운 모험의 황홀함을 느꼈다. 기회가 온다면, 나는 날아오를 수 있다. 붉은 언덕 위에서 눈을 뜨거나, 사람들이 벌판을 끝없이 질주하는 곳에서 깨어난다면, 나는 틀림없이 하나의 공기방울이 될 것을 안다. 하지만 또 언제 그 날이 올 수 있을까?


나는 무거워지고 있다. 나이 먹으면서, 하늘을 나는 것과는 다른 경험들로 삶을 채우면서, 점점 무거워진다. 속에 꼭 잡아두는 고집이 많아지고, 하지 못한 말들이 촘촘히 쌓여간다. 나는 땅을 단단히 붙들고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나를 상상한다. 어쩌면 내일은 날기 딱 좋은 날이 될지 모른다고 기대하면서 서 있다. 또다시 삼 년을, 십 년을 기다린다고 해도, 나는 하늘을 잊지 못할 것임을 안다. 아침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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