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밤이다. 주헌이와 영민이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다. 그들은 수학 강의를 들으며 서로 두런두런 의견을 나눴다. 나는 동생들과 놀고 싶을 뿐이었다. 묘하게 끝말을 흐리는 지루한 수학선생의 목소리가 거슬려 왔다. 함께 게임을 하든지, 넷플릭스라도 깔깔거리며 밤새 보고 싶었다. 침대 밑에 앉아, 몇 번 말을 걸어봤지만 허사였다. 주헌이가 너무나 단호하게 말했다.
"딱 한 시간만 들을게."
영민이가 내가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 귀찮은 것은 그 온라인 강의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영민이는 고작 중학생이었다. 얼마 전 유명 연예인 '아진'이 내게 수학공부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후로 툭하면 주헌이와 영민이는 날 놀렸다. 내가 평소에 그 연예인의 팬이었으므로 영민이가 특히 즐거워했다. 솔직히 좀 웃기기는 했다. 어쨌든 지금은 그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생들이 놀아주지 않으면 딱히 할 것이 없었다. 나는 한가한 휴학생이었다. 유튜브로 아주 똑똑한 개 영상이나, 커다란 관자를 우적우적 씹는 영상을 봤다. 한 십오 분쯤 보고 있을 때, 주헌이가 짜증을 냈다.
"관자 씹는 소리 때문에 집중이 안돼."
"이어폰 끼고 있을게. 관자인 줄은 어떻게 알았어?"
"그냥 거실에 좀 있어. 한 시간만."
주헌이가 얼마나 모질게 말했던지,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 뻔했다. 우리는 끝내주는 밤을 보낼 최고의 환경에 있는데, 대머리 선생님의 수학 수업이나 들으며 기회를 날리는 중이었다. 주헌이는 열여덟 살이나 먹고, 그 사실을 왜 모르는 걸까? 우리는 해변으로 나가서 갈매기한테 밥을 주거나, 두부와 버섯으로 야식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섭다고 소문난 버라이어티 예능을 볼 수도 있었다. 막상 떠올려보니 그렇게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아주 멋지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거실로 나가기로 했다. 너무 귀찮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엄마?"
"응, 재미있게 놀고 있어?"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었다.
"진짜 재밌어. 최고야."
통화소리가 들렸는지 주헌이와 영민이가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동생들도 엄마를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통화할 때마다 꼭 같이 있고 싶어 했다. 엄마가 말했다.
"밥은 먹었어?"
"버섯 카레나, 오므라이스를 주문하려고."
입맛을 다시며 대답하는데, 갑자기 주헌이 전화기를 뺏어 들었다.
"자꾸 돈을 막 쓴다니까. 그냥 집에 있는 거 먹을 거야. 심지어 냉장고에 카레랑 버섯 전부 있는데."
영민이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합류했다.
"나는 카레랑 버섯 싫어."
배달하는 버섯 카레라이스는 정말 맛있다. 오믈렛으로 주문하면 우주에서 가장 보드라운 오므카레를 준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앉은자리에서 세 접시는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다. 영민이를 흘겨봤지만 그 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너희 아침 일찍 집으로 좀 와야겠다."
엄마는 미안한 듯이 말했다. 계획대로라면 다음 주쯤에야 돌아가는 것인데, 이상했다. 우리가 아무리 앓는 소리를 내도, 엄마는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주헌이에게 그냥 돌아가지 말자고 속삭였지만 걔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대답만 했다. 나는 다시 한번 엄하게 진심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영민이가 입모양으로 아주 나쁜 말을 했다. 그 수학선생에게 배운 것이 틀림없었다. 중학생들이란. 우리가 옥신각신하는 동안 핸드폰 너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빠 목소리랑 삼촌들 목소리가 차례로 들렸다. 순간 엄마가 너무 큰 소리로 화내서,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쪽의 삼촌들과 아빠도 조용해졌다. 무언가 일이 생긴 것이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에 엄하게 혼내기는 해도,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대충 대답을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주헌이, 영민이, 그리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주식 어쩌고 한 것 같은데, 들었어?"
주헌이가 말했다. 영민이는 곧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지며 소리쳤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거야. 이 XXX!"
불안감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우리는 출발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떠나기로 했다.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이른 이별을 하게 되어 서운했다. 아직 갈매기에게 과자도 주지 못했다. 어차피 주헌이에게 갈매기 공포증이 있었으니, 같이 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겁쟁이 주헌이.
나는 배편을 알아봤다. 새벽에 뭍으로 나가는 오징어잡이 배가 하나 있었다. 이건 우리를 위한 배였다. 예약하고 동생들에게 짐을 싸라고 했다. 오징어잡이 배를 탈 것이라고 하자 동생들도 좋아했다. 나는 별로 짐이 없었다. 노트북이랑 지갑, 옷 몇 벌만 챙기면 됐다. 빨리 준비를 마친 영민이가 분리수거를 해 두었다. 영민이는 북극곰을 사랑한다. 그게 그 아이의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부분이었다.
바다의 짠 바람이 향긋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바닷가에 있는 우리 보금자리를 올려다보았다. 벌써부터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또 올 일이 있을까? 주헌이는 나의 팔을 당기며 재촉했다.
"세상에..."
오징어잡이 배는 상상 이상으로 멋졌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잔뜩 감긴 조명 하며 촘촘한 그물이 인상적이었다. 영민이가 먼저 선착장으로 뛰어갔다. 우리는 모두 뛰었다. 아직 조명도 켜지 않았는데, 빛에 달려드는 오징어가 된 기분이었다. 먼저 배에 오른 영민이가 직원 분께 인사를 하고, 모바일 티켓을 보여주었다. 직원은 우리를 오징어 나라로 데려갈 요정처럼 보였다. 동생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유치했다. 승객들은 배의 뒤편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원래 사람을 태우는 목적의 배가 아니므로 안락한 자리는 없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우리 세 명이 꼭 붙어 앉았을 때, 배가 출발했다. 잠시 동안 새카만 바다에 오징어잡이 배는 작은 조명으로 흘렀다. 밤의 한가운데까지 다다랐을 때, 조명이 켜졌다. 조명은 한꺼번에, 서서히, 푸른색으로 빛났다. 나는 영원히 이 장면을 기억할 것이었다. 영민이는 살짝 우는 듯했다. 오징어잡이 배는 우리를 안전하게 뭍으로 데려다주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잠깐이지만 이십 년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러나 한 시간 가량의 항해가 끝나고 땅을 밟으니, 다시금 걱정이 밀려왔다.
늘 여행에서 주헌이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반면 나는 길 찾는 것에 서툴렀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주헌이는 내가 편하게 산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주헌이는 둘째답게, 여러 가지를 능숙하게 해 냈다. 내가 주헌이었으면 서운하게 여겼을 일들이 많았다. 어쨌든 주헌이는 언제나처럼 우리가 타야 할 지하철을 찾았다. 가장 가까운 역을 찾았고, 그 다음에 거기까지 가는 방법을 찾았다.
"아, 첫차다. 이걸 타야겠네."
"어디로 가야 해?"
"걸으면 금방이야. 가자."
사실 금방은 아니었다. 우리는 사십 분 정도 걸어야 했다. 우리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아무도 별 불만이 없었다. 더없이 든든한 기분으로 영민이와 나는 주헌이를 따라 걸었다. 지하철역 입구가 보였다. 지하도에 내려가기 직전, 영민이가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응. 우리 배곧 역에 도착했어."
영민이는 한쪽 귀를 왼손으로 막고 통화를 했다. 별로 시끄럽지도 않았는데, 잘 안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습관일지도 몰랐다. 주헌이와 나는 먼저 지하도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엄마랑 아빠가 유온역에 있대. 경이도."
나는 아침의 지하철을 한껏 즐겼다. 사람은 몇 없었고, 우리는 피곤함에 절여진 채였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유온역이 코 앞이었다. 영민이와 주헌이를 깨웠다. 지하철은 아까보다 사람이 많았다. 그중 어떤 무리가 계속 우리 쪽을 쳐다봤다. 우리를 본 것이 아니라 영민이 옆 쪽에 앉아있는 아저씨를 쳐다본 것이었다. 그 아저씨는 어린아이처럼 지하철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박수를 크게 치기도 했다. 나는 내심 그 아저씨가 영민이에게 위협이 될까 봐 불안했다. 그 애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금방 유온역이었기 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은 천천히 역으로 들어섰다. 점점 천천히 지나기는 바깥의 풍경에 엄마와 아빠, 경이의 얼굴이 보였다. 경이가 우리를 보곤 손을 흔들었다. 아마 아주 보고 싶었을 것이다. 순간 영민이의 옆자리에 앉았던 아저씨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른 것인지, 소리가 난 것인지는 모르나, 그는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뛰어나갔다. 아저씨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무리 중 한 사람이 무어라 욕설을 뱉었다. 우리 가족은 그 장면을 보느라, 인사를 나누는 대신 그냥 서 있었다. 아빠가 먼저 말했다.
"정신지체장애가 뭐지?"
영민이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몸은 점점 어른이 되는데, 아직은 아기의 정신인 거지."
나는 영민이가 유치하고, 무척이나 배울만한 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말이 정확한 뜻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나는 아빠가 물었을 때, 유명한 드라마에 나오는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살인마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장애에 대한 그릇된 공포와 희화화를 담고 있는 드라마였다. 이제 정신지체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것도 같았다. 나는 영민이보다 먼저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유온역을 잠시 걸었다. 경이는 풍선껌 기계에 마음을 빼앗겨서 한참을 서성였다. 아빠가 풍선껌을 뽑아주자, 막내는 한동안 조용했다. 엄마가 말했다.
"펜션을 하나 빌렸으니까, 이동하자."
그쯤 되니, 나는 내가 뭘 알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질문할 게 없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나뉘어서 차 두 개로 이동했다. 경이, 아빠, 주헌이가 먼저 가고, 나와 엄마, 영민이가 함께 차를 탔다.
"얼마나 걸려요? 그건 물어봐도 되죠?"
조수석에 앉아 약간 빈정거리자, 엄마는 삼십 분 정도 걸린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야 해."
"자전거?"
영민이가 뒤에서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자전거가 어디 있는데?"
엄마는 살짝 웃기 시작했다.
"트렁크에 실어놨어. 탈 줄 알지?"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여행이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빙글빙글 도는 오르막길 위를 달렸다. 엄마는 원래 오르막길이라면 기겁을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아래는 아득했고, 나조차 살짝 긴장이 되는데, 우리 차는 점점 빨리 달려갔다.
한참을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던 엄마가 중얼거렸다.
"아이고... 좀 천천히 달려야겠다."
"이게 무슨 일이야?!"
참새가 한 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많아졌다. 곧 오십 마리는 되어 보이는 새들이 도로를 함께 달렸다. 몇몇의 낮게 날던 참새가 차 앞유리에 부딪쳐 나동그라졌다. 우리는 여덟 마리를 차로 치었다. 엄마는 차를 세우지 않았고, 나는 조수석에서 벌벌 떨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어."
참새가 앞유리창에 터질 때마다 죄책감 조금과, 사고가 날 것 같다는 불안함이 크게 밀려들었다. 그렇게 안전벨트를 붙들고 살짝 울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도로가 끊겨 있는 것이 보였다.
"도로 끊겼어! 세워야 돼, 이제."
엄마를 흔들며 말했지만 그는 세우기는커녕 속도를 냈다. 이제 확신했다. 엄마는 미쳐버렸다. 우리는 전부 죽을 것이다. 참새를 여덟 마리,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죽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와 영민이는 비명을 질렀다. 절벽이 바로 코앞이었다.
자동차는 부웅하고 날아 낭떠러지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계속 달렸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엄마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고소공포증이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누가 낭떠러지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어쨌든 심장이 곧 터질 것처럼 뛰고, 소름으로 손발이 얼어붙었다. 내 생에 그렇게 멋진 조수석 경험은 없었다. 엄마가 진심으로 멋져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대신 영민이가 입을 떼었다.
"원래 자동차가 이 정도는 뛰어넘나? 엄마는 알고 있었어?"
영민이도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엄마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겁쟁이들."
"아니, 엄마가 대답을 안 하니까 무섭잖아."
뒤늦게 민망해져서 짜증을 내자 엄마는 또 그냥 웃는다. 길이 좁아서 차가 들어갈 수 없을 곳까지 간 우리는 트렁크에서 각각의 자전거를 꺼냈다. 나는 자전거를 잘 탔다.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또 면허는 없지만 그래도 망설임이 없었다. 영민이는 자전거를 조금 무서워했다. 자기는 계속 아니라고 했지만 영민이는 거짓말을 잘 못했다. 땅이 고른 곳에서 영민이와 자전거를 바꿔 탔다. 사실 별 차이는 없지만 걔가 너무 무서워해서 아무렇게나 제안한 것이었다. 영민이는 그러자고 했다. 얼마 더 달린 후에, 한번 더 물었다. 영민이는 나의 자전거가 부드럽고 심플해서 좋다고 말했다. 그게 당최 무슨 소리인지는 몰랐지만, 영민이가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 애는 우리가 여행지에서 샀던 시계를 차고 있었다. 나도 다시 출발하기 전에 얼른 시계를 찼다. 시계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동생이랑 같은 물건을 맞추는 게 즐거웠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달렸다.
"경아! 우리 왔어."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땀과 먼지에 잔뜩 더러워져 있었다. 경이가 모두를 불러 모았다. 그 애는 한 명 한 명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