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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민 Feb 28. 2021

쓰레기를 훔치다.

외전 - 소명의 꿈

  지독하게 덥다. 잠깐 스치는 바람이 겨우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듯하다. 소명이 땀을 많이 흘리자 무연은 동생을 놀려댄다. 소명은 민망한 기분으로 무연의 팔꿈치를 밀어낸다. 여름이 좋은 단 한 가지 이유는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무연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때, 걔가 그러는 거야.”

소명은 무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내리쬐는 햇빛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무연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꼬리는 짧은데,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잠시 후 04번 버스가 도착한다는 알림이 들린다. 소명은 손등으로 턱을 쓱 쓴다. 무연이 무슨 얘기 중이더라?

“그래서 언니는 뭐랬는데?”

“아하하, 나는 살고 싶다고 했지. 뭐.”

무연은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한다. 소명은 이 더운 날 그렇게 웃는 사람은 얼음장수랑 무연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얼음장수라니 실제로 본 적도 없다며 혼자 고개를 젓는다. 무연은 다시 말한다.

“나는 살고 싶다고 했지. 뭐.”

그 말에 소명의 심장이 갑자기 쿵 떨어진다. 한 번 내려앉은 심장은 그 반동에 점점 요동친다.

“아, 다행이다. 다음에도 꼭 그렇게 말해. 나 왜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지?”

무연은 소명의 머리를 넘겨준다. 소명은 아직도 둥둥거리는 심장 부근에 손을 올리고 있다. 

“버스 온다.”

무연의 높게 묶은 머리칼이 흔들린다. 손바닥이 축축하고, 언니를 보는 소명의 마음은 보송하다. 무연은 손을 흔들며 버스에 올라탄다.

“야, 다음에는 우리 학교 근처에서 봐.”

“알았어. 알았어.”
소명은 무연이 뒷좌석으로 걸어가 앉는 것을 보며 서 있다. 버스 문이 닫힐 때쯤, 소명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소명은 출발하려는 버스를 멈춰 세우고는 외친다.

“잠깐만요! 저도 탈게요!”

소명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금방 뚝뚝 떨어지는 그것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버스의 문이 열리고 소명은 비틀거리며 올라탄다. 무연의 표정이 볼만 하다. 깜짝 놀란 무연은 기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뭐야? 왜 탔어? 왜 울어?”

소명은 무연 옆에 앉아 눈물을 대충 닦는다. 민망한 기분이 든다. 

“아, 나도 같이 가려고.”
 무연은 축축한 동생의 얼굴을 잠시 보더니, 미소 지으며 말한다.

“뭐, 그래. 요즘 힘드냐?”

소명은 괜히 소명의 손가락 끝을 꾹꾹 누른다. 

“그냥, 자주 못 보잖아.”
 “그런 얘기도 잘 안 하면서.”

무연은 동생을 실컷 놀린 후 소명의 손을 꽉 잡는다. 버스는 얼마 간 잘 달린다. 소명은 잠시 숨을 고를 만큼의 평화를 느낀다. 무연이 손을 잡아주고, 찌는 더위 속에 함께 달리는 순간이 애틋하여 견딜 수 없다. 별안간 버스는 멈춰 선다. 운전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며 이야기한다.

“이제부터 오르막길인데, 이게 좀 가파르네요.”

소명은 앞 유리 너머로 보이는 오르막길을 쳐다본다. 경사가 40도는 되어 보인다. 운전사는 계속 말한다.
“올라가다가 뒤로 밀리기라도 하면, 큰일 나겠는데.”
승객들은 별 말이 없고, 무연은 소명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인다.

“소명아, 올라갈 수 있을까?”

버스가 저 길을 올라갈 수 있나? 소명은 알 수 없다. 운전사는 버스 안을 한차례 둘러보고 아무도 말이 없자 다시 운전을 시작한다. 

“글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버스는 점차 경사를 오른다. 처음에는 꽤 빠른 속도로 오른다. 이대로만 가면 충분히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점차 느려진다. 중간쯤 가자, 버스는 아예 멈춰 선다. 소명은 슬쩍 뒤를 돌아본다. 금방이라도 밀려 떨어질 것 같다. 이미 많이 올라왔기에 뒤로 밀리면 말 그대로 추락이다. 소명과 무연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경사의 어마어마한 각 때문에 거의 누워 있다. 소명은 눈을 감는다. 몸에 소름이 돋는다. 땀이 뻘뻘 난다. 소명은 머리가 터지도록 속으로 외친다.

‘떨어지면 안 돼! 제발, 제발 올라가!’

무연은 소명의 부들거리는 손을 꽉 잡았다 놓았다 하며 진정시키려고 한다. 

“하하, 너 겁먹은 거야?

”언니, 제발 가만히 있어. “
 버스가 크게 흔들리고, 소명은 결국 울음이 터진다. 소명은 다급하게 무연의 손을 그러쥔다.

”죽지 마. 죽지 마. 언니. “

갑작스럽게 버스가 가벼워진 것 같이 느껴진다. 꼭 감은 눈 너머에서 버스가 조금씩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소명은 마음속으로 되뇐다.

‘할 수 있어. 누구도 죽지 않아.’


눈을 뜨니 소명은 버스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다. 무연이 탄 버스가 저 앞에서 멀어져 간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쥐고 있었던 무연의 손은 온데 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구깃한 메모집 하나가 들려 있다. 아, 소명이 언니의 손을 놓쳤다. 여름 열기에 앞이 핑 돈다.     


소명은 그것이 모두 꿈인 줄 알고도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그냥 눈을 감고 오래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세상에서 무언가 하나는 지워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움이라든가, 죄책감이라든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소명은 그저 누워 있었다. 문자 알림이 울렸다. 소명은 어머니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가족 행사가 있으니 들르라는 말이었다. 소명은 가만히 생각했다. 무연의 메모집을 가지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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