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따뜻함의 곡선

한 그릇이 말의 모서리를 둥글게

by 오석표

새해 첫날, 성산일출봉을 올랐다.
어둠이 아직 남아 있고 바람이 매서웠다.
숨이 하얗게 피어오를 때, 동쪽 하늘이 아주 천천히 밝아졌다.


해가 수평선 위로 고개를 들던 순간,
누군가가 떡국을 나눠 주었다.
산악회였는지, 공공기관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은 건 뜨거운 김, 둥근 그릇의 온기, “올해도 밝게”라는 짧은 축복.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을 때
차갑던 손끝이 먼저 풀리고, 마음이 뒤따라 풀렸다.
국물 한 숟가락이 목을 지나가면서
막 올라오려던 말의 각도도 둥글어졌다.
따뜻한 국 한 그릇이 관계의 속도를 낮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식탁에서 국을 먼저 떠 본다.
먼저 국을 건네고, 매운 건 괜찮은지 묻는다.
정확함 뒤에 온기를 더하는 순서.
그 순서 하나가 오늘의 대화를 다정하게 만든다.


집에서도 국은 마음을 정리하는 도구가 된다.
바쁜 날일수록 국물의 온도를 천천히 맞추고
숟가락 템포를 조금 늦춘다.
속도가 내려가면 하루의 결이 매끈해진다.


해돋이는 여러 번 보았지만,
가장 선명한 장면은 그 떡국의 김이다.
누군가 이른 새벽에 끓여 올렸을 그 마음이
낯선 사람들을 잠시 ‘우리’로 만들었다.
나눔은 설명보다 빠르게 전해진다.


오늘 식탁에서도 그 장면을 반복한다.
국 한 그릇의 둥근 곡선으로
말의 모서리를 덜고, 하루의 온도를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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