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포장, 해석은 조금 뒤에
저녁 식탁, 남은 반찬 위에 랩을 한 장 덮는다.
김이 식을 틈을 주고, 공기를 살짝 빼며 가장자리를 눌러 준다.
덮어둔다고 미루는 게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도시락 반찬은 밤을 건너 내일의 힘이 된다.
오늘의 향을 그대로 내일로 옮기기 위해
너무 꽉 누르지 않고, 너무 느슨하지 않게.
말에도 랩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감정이 뜨거울 땐 문장을 잠시 덮어 둔다.
지금은 포장, 해석은 조금 뒤에.
식히고 나면 과한 말이 빠지고 핵심만 남는다.
회의가 끝난 뒤 보고서를 바로 보내지 않고
한 번 더 덮어 둔 채 다른 일을 다녀온다.
돌아와 읽으면 틀린 수치가 보이고,
불필요한 형용사가 스스로 물러난다.
시간은 최고의 보존제다.
상처에도 덮음이 먼저다.
모서리 난 말 위에 얇은 침묵을 얹고,
내일의 사과를 위해 오늘의 온도를 낮춘다.
덮어둔 사이에 관계의 살결이 다시 붙는다.
어제밤에 덮어두었던 랩을 뜯으며 남은 반찬을 나눈다.
하루를 잠깐 덮어 두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조금 더 다정해진다.
랩은 숨을 막는 비닐이 아니라
호흡을 돌려 주는 여백이다.
#랩 #포장 #여백 #기다림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