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는 3개의 윤동주 시비가 있다. 그가 다녔던 도시샤대 교정과 하숙집 터인 교토예술대 다카하라캠퍼스 앞, 그리고 우지강변에 그의 시비가 서 있다. 윤 시인이 숨진 뒤 50년이 된 1995년 도시샤대 교정에 처음 시비가 세워졌고, 이어 2006년 하숙집 터 앞에 '윤동주 유혼의 비'가 세워졌다. 또 그로부터 11년 뒤인 2017년 윤 시인이 학우들과 마지먹 소풍을 갔던 우지강변에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가 건립됐다. 묘하게도 11년마다 하나씩 세워졌다. 그래서 나는 이를 '윤동주 시비 11년의 법칙'이라고 속으로 부르고 있다. 과연 제3의 비가 건립된 뒤 11년 뒤인 2028년에도 또 다른 비가 세워질 것인지, 자못 기대가 된다.
지금은 윤 시인의 시비가 3개나 있지만, 첫 시비가 세워지기까지는 난관이 많았다. 특히, 윤 시인이 다니던 도시샤대는 설립자인 니지마 죠의 동상도 세우지 않을 정도로 개인을 기리는 기념물이 없다. 기독교 학교로서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 출신의 노벨 물리학자 수상자인 에사키 레오나를 기리는 기념물도 없다.
이 학교에 윤 시인의 시비를 세우는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1995년 3월 <한국방송공사(KBS)>와 <일본방송협회(NHK)>가 공동으로 제작해 방송한 프로그램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이었다. 당시 윤 시인의 시비 건립을 추진했던 도시샤대 코리아동창회는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학교 쪽을 설득했다. 동창회와 <NHK>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도움을 줬다는 뒷얘기도 있지만, 도시샤대 교정 안에 윤 시인의 시비가 들어선 데 한일 공영방송의 공동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 쪽에서 이 프로그램을 책임진 사람이 다고 기치로 당시 <NHK> 디렉터다. 그가 윤 시인 탄생 100주년에 맞춰 낸 책이 <생명의 시인, 윤동주>(한울, 2018년 3월, 이은정 옮김)다.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2017년에 낸 책을 1년 늦게 번역해 출판했다.
다고씨는 20대이던 1984년에 일본에서 처음 번역 출판된 윤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전시집>(영서방, 이부키 고 옮김)을 통해 처음 윤 시인을 알게 된 뒤 윤 시인을 흠모하고 그의 시를 탐독하게 됐다. 그리고 1995년 한국의 KBS와 윤 시인 관련 프로그램을 공동제작하는 NHK의 책임자로 참여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프로그램 제작 당시 모았던 자료를 연구하고 관련 인물들을 만나 취재를 하며 프로그램 제작 12년 만에 윤 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책을 펴냈다.
그가 정의하는 윤 시인은, 한마디로 "국경과 시대를 넘은 생명의 시인"이다. 그가 윤 시인에 대해 가장 주목하는 점은 윤 시인의 시집의 제목이 <병원>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바뀐 2주간이다. 그는 윤 시인이 원래 지었던 시집 제목 <병원>을 지우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고치는 과정에서 겪은 내면적 변화가 있기에 윤 시인이 '병원'에 갇힌 사람처럼 움츠리는 일 없이, 시대와 나라, 민족을 넘어 빛나는 영원한 시인으로 승화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윤 시인이 시를 수정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윤 시인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서적에 친 밑줄 등을 분석하면서 윤 시인이 생명의 시인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윤 시인의 내면에 들어가 윤 시인을 내재적으로 분석하는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철저하게 자료를 통해 윤 시인의 내면을 육박해 들어갔다.
그가 윤 시인이 다녔던 릿쿄대와 도시샤대 동료들 전원의 전화번호를 입수해 윤 시인의 흔적을 치열하게 추적하는 모습은 가히 기자의 표상이하고 할 만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윤동주 시인과 학우들이 찍은 사진을 찾아냈고, 윤 시인과 관련한 학우들의 증언을 입수했다. 사진을 통해 윤 시인이 마지막 소풍을 갔던 곳이 우지강변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교토에서 윤 시인의 마지막 모습을 재구성하는 데 다고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다고씨는 윤 시인이 후쿠오카 감옥에서 독살됐다는 설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추적했으나,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쪽으로 기운다. 당시 큐슈대 의학부팀이 후쿠오카 감옥에 연구 목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것은 확인했으나, 여러 관계자의 증언과 자료 조사를 통해 그런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보다는 당시 식량 사정이 악화되면서 일본 감옥 전체에서 사망자가 급증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한다.
다고씨가 윤 시인과 관련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교토 시절에 쓴 시가 한 편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도 매년 정기적으로 윤 시인의 시가 교토의 어느 민가에서 발견됐다는 꿈을 꾼다면서 "일본에서 쓴 그의 시가 기적처럼 되살아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동주는 암흑기를 살았던 가장 순수한 영혼이었다. <중략> 그의 27년 짧은 생애는 어떤 시대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인간성의 개선가가 되고 영원한 길잡이로서 우리의 가슴을 울릴 것이다."
그가 윤 시인을 국경과 시대와 민족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시인으로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나는 2020년 2월 16일 코로나 감염 사태 와중에 도시샤대에서 열린 윤동주 추도모임에서 그의 강연을 듣고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리고 바로 책을 구입해 읽어 봤다. 한 시인의 순수한 시어가 어떤 무기보다도 강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