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의 사과 기자회견과 기자들의 침묵
김건희 기자회견장 모습
나는 기자의 가장 중요한 일이 '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장해서 말하면,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을 대신 묻는 것이 기자가 하는 일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기사도 물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기자들이 개인 기업에 속해 있는 직원이면서도 공적인 존재로 대우 받는 것은 국민(독자)을 대신해 묻는 기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26일 열린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사과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은 그런 일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 아니, 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국민의 힘과 그 당의 출입기자들이 기자회견의 형식과 내용을 놓고 사전에 어떤 약속을 했는지에 관해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유투브로 중계되는 모습을 보면서 묻는 기자는 없고 적는 기자, 찍는 기자만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이 모습은 한국의 언론이 가장 자유로운 환경에 있으면서도 가장 불신 받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김건희씨는 지금 국면에서 가장 질문거리가 많은 사람이다. 여기저기 제기된 그에 관한 의혹은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해명된 것이 없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언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따라서 김건희씨가 스스로 참석한 기자회견장은 그동안 그에 관해 제기돼왔던 의혹을 따져 묻고 확인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김건희씨가 들어와 적어온 사과문을 읽고 나가는 10여분 동안 그에게 한마디 말을 건넨 기자조차 없었다. 의문이 있는 문제를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묻지 않고 당사자가 빠져나간 뒤 당의 관계자에게 묻는 것을 보면서 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저간의 사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문을 읽고 나가는 김건희씨를 불러세워 질문하는 기개 있는 기자가 한 명도 없다는 말인가.
질문하지 않는 기자, 틀에 갇혀 있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 타이피스트에 불과하다. 나는 오늘 김건희씨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기개도, 신뢰도, 직업정신도 잃은 한국언론, 한국 기자들의 민낯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