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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pr 17. 2022

윤석열의 대일정책협의단 구성, 문제 많다.

윤석열, 대일정책협의단, 이상덕, 위안부

윤석열 당선인이 4월 24일부터 28일까지 일본에 7명의 한일정책협의단(단장, 정진석 의원)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이 17일 발표했다. 4월 3일 박진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한미정책협의단 7명을 미국에 파견한 데 이어 두 번째로 외국에 파견하는 정책협의단이다.


이제까지와 다른 것은 특사라는 이름 대신 정책협의단을 사용하는 점이다. 또 예전에는 주변의 4대 주요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특사를 파견했으나 이번에는 아직까지 미국과 일본에만 보내거나 보낼 예정이다. 그러나 이름만 바뀌었지 주변의 주요국에 우리가 자청해 사절단을 파견한다는 점에서 특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앞으로 어느 나라가 추가될지 모르지만 취임까지 그리 시간이 많지 않아 미일 두 나라에만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


윤 당선인이 일본에 정책협의단을 보낼 것이라고 가장 먼저 보도를 한 것은 3월 29일 <아사히신문>이었다. 이 신문은 이 보도 바로 전날 윤 당선인이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방침을 전했으며, 국회의원 및 외교, 일본 전문가로 구성된 협의단이 일본에 대일관계 방침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윤 당선인은 3월 1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에서 4월 중 협의단을 파견할 뜻을 전하고 기시다 총리도 이들과 면담할 의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인수위의 최지현 수석부대변인은 같은 날 "5월 취임 전후 일본에 정책협의단을 파견한다는 언론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최 수석부대변인은 "파견이 확정된 나라는 미국 뿐이고 다른 나라에 협의단을 보낼지는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되돌아 보면, <아사히신문>의 보도가 시기를 다소 넓게 잡은 것을 빼고는 매우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책협의단의 구성까지 거의 일치한다.


나는 한일정책협의단 구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7명의 구성원 중에서 가장 문제가 있는 인물은 이상덕 전 외교부 동북아국장이다. 그는 다 알다시피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28일 발표된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의 외교부 실무 책임자였다. 2014년 4월에 시작한 제1차 위안부 관련 국장급협의부터 2015년 12월 27일 발표 전날 열린 제12차 국장급협의까지 우리 쪽 대표로 줄곧 참석했다. 당시 12.28 위안부 합의가 실질적으로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이 주도한 고위급협의에서 이뤄졌고 국장급협의는 둘러리에 불과했다는 사정은 있지만, 그는 누가 봐도 분명한 12.28 합의의 주역의 한 사람이었다. 그때 그는 외교부의 대표로 실무협상을 하면서 '불가역적'이라는 용어와 비공개 합의의 문제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또 위안부 관련 단체에게 합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우리 쪽이 얻어낸 내용만 설명하고 소녀상 철거 관련 언급과 성노에 표현 사용 금지, 해외의 소녀상 건립에 우리 정부 관여 자제, 우리 정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신대대책협의회의 반발 무마 요청 등의 곤란한 내용은 빼놓았다. 결과적으로 위안부 합의의 파탄에 책임이 크다.


문제는 그가 협의단의 한 사람으로 참석한 것이 어떤 의미를 주느냐일 것이다. 일본 정부는 그가 협의단의 한 사람으로 포함된 것을, 윤석열 정부가 12.28 합의를 부활시키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 일본 쪽은 그렇게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중요한 축인 우리 쪽의 피해자와 피해자 단체들도 그의 협의단 포함을 그동안 반대해왔던 12.28 합의의 부활로 받아들이며 맹반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의 참여가 오히려 한일갈등을 더욱 악화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장호진 전 청와대 외교비서관의 포함도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2000년대 들어 한일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악화시켰던 상징적인 사건은 이명박 대통령의 2012년 8월 독도 방문이었다. 사실 지금의 한일관계 악화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호진 전 비서관은 당시 청와대 외교비서관이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도 한일관계 악화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선친과 인연 등의 덕을 봐, 박근혜 정부 시절에 국립외교원장(2014년 5월~2017년 7월)을 연임했다. 매우 드문 일이다. 일본 문제 전문가로서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대일정책에도 상당한 관여를 했다.


한일정책협의단의 구성이 '이명박근혜' 정부의 외교 담담자와 그때 정책의 '화려한 부할'을 뜻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일관계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일 역사갈등의 씨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뿌려졌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8월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문제 부작위 위헌 판결이 나왔고, 이명박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독도 방문의 악수를 뒀다. 또 박근혜 정부는 여자 대통령으로서 이명박 정부 때 악화한 위안부 문제를 대일외교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강공을 펼치다가 12.28 합의라는 덜컥수를 뒀다. 강제동원 노동과 관련한 대법원(민사1부, 주심 김능환 대법관)의 위자료 지급 판결이 처음 나온 것도 이명박 정권 때인 2012년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이 판결을 파기하려고 '공작'을 하려다 실패했다. 그 결과, 지금 한일 사이에 큰 쟁점이 되고 있는 2019년 10월의 대볍원 전원합의 판결이 나왔다.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일관계를 온전히 문재인 정권이 망쳤다고 비난하는 것은 사실을 무시하거나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 쪽이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정권의 대일정책을 비난하면서 '이명박근혜' 정권의 대일정책을 칭찬할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명박근혜' 정권을 칭찬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선 과정에서 대용물로 활용된 것이 김대중 정권과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라고 본다. 이번 한일정책협의단의 구성이 대선 선거 기간 중에는 김대중 정권을 맘껏 활용하다가 선거가 끝난 뒤에는 '이명박근혜' 모드로 되돌아가자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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