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총영사 시절 이야기
외교 전문은 구어체로 작성될까, 문어체로 작성될까? 아니면 평어체일까, 경어체일까? 일반 사람들은 거의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속살이 자못 궁금할 것이다. 답은, 학교 교육에서는 전혀 배우지도 않는 국적불명의 '개조식'의 문어체다. 나는 3년여 동안 총영사로 일하면서, '개조식'으로 작성되지 않은 외교 전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는 완전한 문장을 이루지 못하는 요약형의 개조식 글이 한글 문장을 망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때 개조식 글을 이른바 '다라마까'로 끝나는 완전 문장으로 고치는 일에 나설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고민 단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이것은 한 외교공관장이나 공관 또는 외교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 공무원 사회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는 문제여서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공사'였기 때문이다.
개조식 문장은 일단 문장의 앞에 '네모' '동그라미' '작대기' 등을 긋고 문장을 시작하는데, 글이 명사나 동사의 명사형으로 끝나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를 검토" "~~를 추진" "~한 것으로 보임." 등의 형태를 취한다. 특이한 것은 명사로 끝날 때는 마침표를 붙이지 않는데, 동사의 명사형으로 끝날 때는 웬지 마침표를 붙인다.
개조식은 시간이 적게 들고 요점이 눈에 쉽게 띄는 등 효율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인 평을 듣기에 너무 흠이 많다.
개조식 글은 크게 두 종류를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문서를 요약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처음부터 새로운 문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둘 다 문제가 있다. 전자는 요약이 아니라 글자 수 몇 자를 줄이는 효과밖에 없다. 더욱이 요약 과정에서 원 문장의 뜻을 훼손하는 경우도 나온다. 후자가 정말 문제인데, '완성본 없는 요약본'의 한계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제대로 요약하기 위해서는 먼저 완성된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후자의 개조식 보고는 완성본도 만들지 않고 요약만 하는 꼴이다. 이러하니 제대로 된 보고가 될 리 없다. 읽는 시간, 쓰는 시간만 절약한다고 효율이라고 할 수 없다.
공무원 사회에서 주로 쓰는 개조식 글에 관해서는 그동안 문제제기가 때때로 제기돼왔다. 한글날을 하루 앞둔 2021년 10월 8일자 <한겨레> '왜냐면'에 실린 "일제식 종결 문장투 '~함' 이젠 고치자"(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라는 기고가 그런 글 중 하나다. 소 전 조사관은 이 기고에서 "개조식 문장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못한 비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문장간 논리적 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렵고 주어가 생략되면서 공직사회의 폐단인 책임회피의 방편으로 이용될 소지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개조식 문장을 탄생시켰던 일본 문어가 원래 의도했듯이 철저히 '권위주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욱 통렬한 개조식 글에 대한 비판은, 이준웅 서울대 언론언론정보학과 교수가 2017년 7월 <경향신문>에 쓴 "소통과 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제기했다. 이 교수는 이 칼럼에서 개조식에 대해 1)주어가 분명하지 않다 2)문장의 기능이 명료하지 않다 3)문장 간 논리적 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4)격조가 없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처럼 공무원사회가 마치 '공무원 글쓰기의 표본'처럼 사용하고 있는 개조식 문장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공무원 사회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들은 척을 하지 않고 있다기보다 어느 한 부처나 어느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뿌리 깊게 박힌 '고질병'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부는 한글날마다 번지르르한 '한글 예찬'을 쏟아내기보다, 한글 문장을 파괴하고 공무원의 창조적 사고능력을 해치는 개조식 글을 공무원 사회에서 추방하고 '완전 문장'의 보고서로 바꾸는 일에 적극 나섰으면 좋겠다. 이것은 문제의 크기를 감안할 때, 범정부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