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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May 01. 2023

검찰을 이용한 '적폐 청산'에 몰두한 업보

검찰개혁, 검찰국가의 탄생, 문재인, 윤석열

개를 너무 귀여워 하면 개가 사람을 깨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손주를 너무 오냐오냐 하고 돌보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손주에게 간혹 뺨을 맞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영향력이 막강한 검찰의 경우는 다르다. 검찰이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해 쓰라고 준 칼을 거꾸로 돌려, '자기 이익'을 위해 주인을 찌르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반역 행위'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검찰이 망나니 칼춤을 추며 주권자인 주인을 농락하는 일을 거의 매일 목도하고 있다. 1년 전 탄생한 '윤석열 검사 독재 정권'이 바로 그 사령부다.

<검찰국가의 탄생>(서해문집, 이춘재 지음, 2023년 1월)은 검찰이 주인을 물어뜯고 정권까지 잡게 된 경위와 원인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인 이춘재씨는 1996년 전두환·노태우 재판 취재를 시작으로, 기자 이력의 대부분을 법조 분야 취재를 하면서 잔뼈가 굵은 법조 전문기자다. 이씨는 검찰 개혁을 두고 추미애 법무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갈등을 빚던 2020~21년 <한겨레> 사회부장을 지냈다. 그러던 중 일선 기자 40여명이 한겨레의 검찰 기사가 친 정부적이라는 항의 성명을 발표하자, 이에 책임을 지고  보직 사퇴를 했다.

이 책은 그가 사회부장을 떠난 뒤 좀 더 객관적으로 검찰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검찰정권의 탄생 과정을 추적해 쓴, '윤석열 검사정권 탄생사'다. 이씨는 검찰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오래 취재한 기자 답게 검찰의 생리, 그간 검찰이 벌인 정치 수사의 사례, 그들 사이의 관계 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2022년 초 대선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즈음, 사석에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정권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차기 정권을 창출하느냐 마느냐에 달렸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문재인 정권은 '퇴임 때 지지율이 역대 최고'였다는 자화자찬과는 달리, 실패한 정권이다. 그냥 실패한 정권이 아니고, 자신이 발탁한 '칼잽이'에게 찔려 피를 흘리며 처절하게 실패한 정권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대내외 거의 모든 현안에서, 자신을 발탁해 키워준 문재인 정권의 정책을 공격하고 비판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문 정권의 실패를 여기서 여실하게 실감할 수 있다. 

저자인 이씨는 문재인 정권의 실패, 곧 윤석열 정권 탄생의 핵심 원인을 한마디로 촛불 시민의 뜻인 검찰 개혁을 뒤로 미룬 채 검찰을 이용해 적폐 청산에 몰두한 데 있다고 말한다. 문 정권이 정권 초기 검찰을 이용해 적폐 청산에 몰두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적폐 청산을 통해 검찰의 힘을 잔뜩 키워주는 바람에 정권까지 검찰에게 넘겨주고 치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권은 검찰주의자인 '윤석열 사단'의 속성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말한다. 이씨가 보는 윤석열 사단의 속성은 이렇다.

 "그들에게 검찰권은 단지 형사 처벌 차원의 권력이 아니다. 검찰권은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자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신성한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을 가진 검찰은 당연히 엘리트 집단이어야 하고, 또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 수사를 이런 생각으로 무장한 윤석열 사단에 전적으로 맡겨버림으로써, 나중에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그들에게 포획돼 버렸다. 심지어 검찰개혁주의자인 조국 교수가 이끌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적폐 청산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주장한 특수부 조직의 확대를 용인하고 지원했다고, 이씨는 지적했다.  

이 책에는 윤석열 검사가 대통령이 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준 그의 검찰총장 발탁과 관련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즉, 누가 윤석열의 총장 기용을 응원했느냐 하는 부분이다.

 "문재인의 청와대 참모들과 민주당 사람들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민 핵심 인사로 양정철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그리고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목한다. 문재인이 청와대와 민주당에 존재한 적잖은 '윤석열 비토'를 뿌리치고 임명을 강행한 것은 이들이 밀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비록 간접화법이긴 하지만, 그가 열심히 관련자들을 만나 취재한 것이라 신빙성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이 중 일부 인사는 이씨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고 얼버무리기도 했다고 한다. 여하튼 문 대통령은 타고난 검찰주의자이며 야심가인 윤석열을 그동안 적폐 수사를 잘해왔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에 발탁했다. 그리고 검찰총장에 오른 윤석열은 검찰총장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검찰 세력 확장에 장애가 되는 국정원, 기무사, 법원을 난도질했다. 급기야 조국, 추미애와 싸움을 통해 자기를 발탁한 문 정권을 본격적으로 겨냥하면서 대통령에 올랐다.  

이씨는 "검찰 정권의 등장은 언론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검찰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감시해야 할 진보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뼈아프다면서 "진보 언론도 '검찰 받아쓰기'와 '검찰발 단독'에 오랫동안 길든 탓"이라고 자성한다. 과거에는 정권의 눈치를 보고 수사를 하던 검찰이 정권에 의해 수사가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언론에 흘리기'를 했고 그 나름대로 정당성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 검찰이 오롯이 수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고 있는데, 타성에 젖어 검찰의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문 정권 안에서만 봐도, 적폐 수사 때 검찰의 흘려주기를 받아쓰는 부적절한 관계를 단절하지 못한 탓에 문 정권을 향한 검찰의 폭주 때 '형평성 딜레마'에 빠져 검찰 견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이씨는 에필로그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검찰 정권은 검찰 개혁의 실패가 낳은 부산물이다. 정치 경험과 국정에 대한 비전, 국가 경영에 관한 철학이 전혀 없는 검찰 내 사조직 집단이 개혁의 대오가 흐트러진 틈을 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정권 장악 시나리오를 현실로 불러낸 것은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도 검찰의 달콤한 유혹과 단절하지 못한 '입진보'였다."

검찰 정권의 탄생은 한국 사회가 꾸준히 이뤄온 민주주의 발전의 여정에서 커다란 일탈이 분명하다. 이런 일탈을 정상 궤도로 복귀시키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무거운 질문을 이 책은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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