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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10. 2023

 조선일보 '진실의 수호자' 참칭한 '기득권 수호자'

조선평전, 방일영, 친일, 친독재, 독극물

'1등 신문', '비판 신문'을 자부하는 <조선일보>가 최근 건설 노동자 양회동씨가 분신 사망한 것과 관련해, 분신을 방조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5월 17일 자 ‘분신 노동자 불붙일 때 민주노총 간부 안 막았다’ 최훈민 기자). 또 이 신문사가 발행하는 월간지 <월간조선>은 다음날, " ‘분신 사망’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유서 위조 및 대필 의혹"(김광주 기자)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을 상기시키는 악랄한 조작 뉴스다. 이들 보도가 주변 목격자의 확인 취재도, 필적 감정도 하지 않은 부실 조작 보도라는 것이 드러났다. 아마 조선일보는 강기훈 사건 때처럼 '내가 보도하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 따위 기사를 내보냈는지 모르겠으나 이번엔 그런 영향력이 통하지 않았다.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조선일보가 여전히 기득권세력

입장에서 의제 설정을 주도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의제 설정의 힘이 예전보다 약해졌다는 것이다.

<조선 평전>(자유언론실천재단, 손석춘 지음, 2021년 3월)은 우리 사회의 '문제적 존재'인 <조선일보>의 역사를 인물 평전처럼 쓴 책이다. 저자인 손씨는 "지난 100년을 한껏 자부하며 '새로운 100년'을 시작한 그를 보고 애독자들이 반드시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또 책을 펴낸 자유언론실천재단 쪽으로부터 "조선일보 기자들이 스스로 성찰할 수 있고 청소년도 읽을 수 있도록 써달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받아 썼다고 말했다. 평전이라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조선일보는 '그'라는 대명사로 불린다.

이 책은, 2020년 3월 5일 창간 100돌을 맞은 그가  '진실의 수호자'라는 말을 열쇠로 내용을 이끌어간다. 과연 그의 100년이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진실의 수호자'였나는 것을 줄곧 묻고 있다. 특히, "100년 전 그 춥고 바람 불던 날처럼, 작아도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겠습니다"는 제목의 사설 내용을 시대별, 주제별로 톺아보며 공과를 평가하고 있다.

물론 공보다 과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그가 100년 기념 사설에서 공이라고 주장한 것이 얼마나 모순되고 거짓인지를 구체적인 보도 사례를 통해 자세하게 격파하고 있어, 공과의 불균형에도 전혀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통쾌한 기분이 든다.

그는 자신이 창간 때부터 민족지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친일 실업인 단체인 대정친목회가 창간 모체였다. 이상재 사장-신석우 편집국장 체제 때 잠시 항일적인 논조를 보인 적이 있지만, 1933년 방씨 일족 지배체제의 효시인 방응모 때부터 줄곧 친일· 반민족의 길을 걸었다. 해방 이후 처음에는 김구와 이승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이승만 체제가 굳어진 이후 친권력, 친독재, 친재벌의 성향으로 치달았다.

구체적인 내용 소개는 생략하지만, 그 중 하나 소개하고 싶은 것은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대표 기자(김대중)에 관한 얘기다. 창간 100돌을 맞은 해에 조선일보 기자들은 김대중 고문(당시 직책)을 '조선일보만의 상징만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대표'라고 공언했는데, 외신부 시절 그의 수습 생활을 지켜본 리영희 외신부장의 평은 전혀 다르다.

다음은 리영희씨의 회고다. 

"나는 다른 견습기자들은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면 우수한 저널리스트가 되겠지만, 김대중 군만은 어렵겠다고 실망했어. 그런데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될 것으로 믿었던 기자들은 1974년에 일어난 언론자유 투쟁 때 앞장섰다가 다 쫓겨났어. 반대로 도저히 구제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던 그 김대중 기자만은 그대로 남아서 논설주간이 되고, 주필이 되고, 한국 여론을 쥐고 흔드는 막강한 조선일보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더군."

사람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므로 이씨의 평가가 100% 맞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광주항쟁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보도하고 사과 한 마디 없었고, 대선 때마다 노골적으로 한 쪽 편을 든 사람을 대표 언론이라고 꼽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치 편파의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2002년 대선 전날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하자 밤중에 다른 사설을 내리고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는 제목의 사설로 급히 갈아끼웠다. 또 김대중-이회창-이인제 세 후보가 나온 1997년 대선 때도 대놓고 이회창 후보의 편을 드는 보도를 주도했다. 아직도 그는 편파와 요설로 가득한 칼럼을 집필하고 있다. 

 저자는 그의 100년 동안의 생을 돌아본 뒤, 그가 '트라우마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가 앓고 있는 트라우마는 두 가지다. 하나는 '친일 트라우마'다. 10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친일반민족행위 청산에 예민하고 종종 적대적인 기사와 논평을 내는 것이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둘째는 '친독재 트라우마'다. 이 트라우마 때문에 민주화운동이나 친보운동에 대해 틈 날 때마다 과도하게 공격한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하며, 저자는 의문을 표시한다. 또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앞으로도 여론을 쥐락펴락하겠다고 결기를 다진다면, 자칫 우리 사회 전반에 PTSD가 만연할 수 있다. 그가 이미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부문의 자·타칭 엘리트들의 의식구조를 끝없이 병리적으로 만들어왔기에 더 그렇다"고 걱정한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시장을 독과점한 종이신문과 인터넷신문, 텔레비전을 모두 소유해  자칭 '종합 미디어그룹'을 이룬 그가 '진실의 수호자'였음을 자부한 공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한다. 진실의 수호자가 아니라 기득권 수호자였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시중에 떠도는 '언론이 아니라 흉기' '독극물'이라는 그에 대한 평가가 과장이 아니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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