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바이마르공화국, 윤석열, 독재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요즘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목도하면서 드는 우울한 의문이다.
국내에서는 윤석열 정권의 폭정이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대통령 자신과 부인을 지키기 위해, 국회에서 통과된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대통령의 거부권을 거침없이 되풀이 행사하는 것이다. 헌법에 규정돼 있으니 합법이라고 강변하겠지만, 사익을 위해 법을 사유화하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정신과 국민의 뜻을 짓밟는 폭거다. 민주화 이후의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이 자신과 가족 문제와 관련해 국회에서 통과한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만 봐도 윤 대통령이 얼마나 무도한 정치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국외에서는 어떤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뒤 불복하며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정치 쿠데타'를 뒤에서 지원한 혐의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가능성도 꽤 높다. 이런 일이 민주국가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모범적이라는 미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 이슬람, 반 이민, 반 세계화를 내건 극우 세력이 크게 약진한 것은 또 어떤가.
국내외에서 벌어진 이런 충격적인 일들의 공통점은, 모두 합법 절차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권도 선거를 통해 탄생했고, 유럽의회의 우경화도 선거라는 합법 절차의 산물이다.
이런 결과를 '합법 절차를 거친 악의 탄생'이라고 부른다면, 그 원조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일 것이다.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눌와, 벤저민 카터 헷 지음, 이선주 옮김, 2022년 4월)는, 부제가 말하고 있듯이 히틀러의 탄생으로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졌는가를 꼼꼼하게 분석한 책이다.
미국 뉴욕시립대학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히틀러가 탄생할 당시의 상황을 방대한 문헌과 최신 연구 자료를 토대로 들여다보면서, 민주주의 국가 바이마르공화국이 어떻게 히틀러에게 접수돼 가는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역사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요즘 나라 안팎에서 독버섯처럼 번지는 극우 포퓰리즘을 과거 사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은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당대 최고의 민주주의를 실현한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어떻게 최악의 독재자 히틀러가 탄생했는지 하는 의문을 출발점을 삼아 과거로 여행을 한다. 1차 대전의 패전과 혁명으로 탄생한 바이마르공화국은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를 제도적으로 보장했고, 총선에서 비례대표제를 채택해 유권자의 민의를 충실히 반영했다. 당시 세계에서 제도적으로 가장 훌륭한 민주 제도를 운용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국내외적 상황과 이유로, 바이마르공화국은 침몰하며 히틀러에게 정권을 갖다 바친다. 저자는, 이런 책임을 독일 국민에게만 묻는 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말한다. 왜곡된 집단 기억, 주류 정치권의 실책, 경제 위기, 반세계화ㆍ반민주 정서, 진영 갈등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선동적인 연설이라는 히틀러의 특별한 재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자신들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쉬운 선택을 한 엘리트 집단들의 무분별함과 히틀러를 ‘얼굴마담’으로 세워 권력을 유지하려 한 기성 정치인의 오판이 없었다면 히틀러는 결코 집권하지 못했을 거라는 얘기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벌어진 민주주의의 죽음을, 국제 정세·법률·정치·경제·사회 영역을 두루 아우르며 분석한다. 이를 위해 당시 벌어진 주요 사건과 주요 정치인들의 발언과 시선을 따라가며 원경과 근경을 자유자재로 그린다. 1차 대전 패전 때 분위기부터 히틀러에 제거 계획의 실패까지 시간 순으로 따라가며 분석한다. 독일 역사를 다룬 책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이 낯설지만, 책 앞 부분에 붙여놓은 주요 인물 소개 및 정치 지형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주요 정당 설명자료가 도움을 준다.
1차 대전 패전 직전 사회민주당 등 좌파 세력이 혁명으로 독일제국을 무너트리고 세운 바이마르 공화국은, 제도는 훌륭하고 선진적이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전쟁배상금과 금본위제와 함께 찾아온 국제 질서, 무역과 경제·난민 위기를 초래한 세계화는 이에 분노하는 이들이 곧 자유민주주의의 적대자로 내모는 토양이 됐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휴전 당시 군 총사령관) 등 군부 세력은 자신들이 휴전의 불가피성을 용인했지만, 사회민주당 등 좌파세력이 등에 칼을 꽂는 바람에 패전을 했다고 거듭 선동을 해댔다. 사회민주당은 패전 뒤 국방비 증가에 반대했고, 임금 인상 합의를 국가가 중재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군대는 국방비를 더 늘리고 싶어 했고, 대기업은 임금 중재 제도를 철폐하고 노조를 약화시키고 싶어 했다. 농민들은 세계적인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인해 세금을 내지 못하거나 파산해 울분이 극에 달했다. 농민들은 이후 사회민주당의 적대자이자 나치를 선택한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가 됐다.
이런 사분오열의 상황에서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쿠르트 폰 슐라이허, 프란츠 폰 파펜 등의 보수 정치인들은 사민당 정권을 몰아내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 통합된 우파 정부 수립을 꿈꿨다. 이런 생각 아래 그들이 임시적으로 '고용'하려고 한 인물이 바로 히틀러였다. 그러나 이것은 커다란 오판이었다. 히틀러의 전임 총리였던 프란츠 폰 파펜은 "우리가 그를 고용했다" "몇 달 안에 궁지로 몰아넣어 꼼짝 못 하게 할 거야"라고 장담했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독일은 히틀러 천하로 변했다. 조작된 국회의사당 화재(1933년 2월 27일)를 빌미로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과 유사한 '국회의사당 화재 법령'을 만들어 합법적인 독재의 길을 닦았다. 이어 정부가 4년 동안 모든 입법권을 행사하는 수권법을 강압적으로 통과시켜 독재를 완성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히틀러는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파 세력이 자신들의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대안 인물을 고용하려다가 되치기 당한 건,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보수 기득권 세력과 윤석열 대통령의 관계와 매우 흡사하다.
뒤늦게 히틀러의 위험성을 깨달은 일부 세력은 파펜 부총리실을 중심으로 히틀러 제거 작전을 펼친다. 하지만 이미 사방에 촉수를 뻗쳐 놓고 있던 히틀러 세력에 발각되어 체포되어 고문 받거나 살해된다. 이른바 '장검의 밤' 사건(1934년 6월 30일)이다. 이를 계기로 히틀러는 병사한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이어받아 대통령 겸 총리로 등극한다. 그리고 총통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트레블링카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바비 야르 학살이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마지막 몇 달 동안 이뤄진 죽음의 행진을 1933년에 상상할 수 있었던 독일인은 거의 없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미리 내다보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순진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나중에 태어난 우리에게는 당시 독일인보다 유리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연 '나중에 태어난 우리'는 그들의 사례를 참고해 히틀러 탄생과 같은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 바로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당장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