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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전문가 바보'가 아니라 교양인이 필요하다.

다치바나 다카시, 도쿄대,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제너럴리스트

by 오태규

"여러분 중에 열역학 제2법칙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인 찰스 퍼시 스노(1905~1980)가 문과 계열의 지식인 집단의 초대를 받아 강연을 했을 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과학과 과학자를 너무 우습게 여기자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강연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물론 손을 든 사람도 없었다.

그는 방금 한 질문이 문과 계열 사람들에게 "당신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본 것이 있습니까?"라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이과 계열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스노는 문과와 이과 계열 지식인들이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며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적대감과 혐오감까지 가지고 있는 현상을 통렬하게 꼬집은 것이다. 이 내용은 스노가 쓴 <두 문화와 과학혁명>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과연 한국의 지식인들에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땠을까? 나는 영국보다 훨씬 더 심했을 것이라고 본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를 갈라 교육하는 한국의 교육 풍토가 한국보다 교양 교육을 훨씬 중시하는 영국보다 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청어람미디어, 다치바나 다카시, 2002년 11월)는 일본 교양 교육의 붕괴를 통렬하게 비판한 책이다.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에서 최강의 총리였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를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 그 인맥과 금맥'이라는 탐사 보도로 날려버린 사람이다. 일본에서 탐사 저널리즘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다나카를 몰락시킨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얻었지만, 관심 영역은 정치와 사회에만 머물지 않았다. 학력은 도쿄대 불문과와 철학과 학사에 불과했지만, 우주와 뇌과학, 바이오공학, 인류의 미래 등 첨단 과학 분야까지 두루 섭렵한 '지의 거장'이었다.

이 책은 그가 1996년부터 3년간 도쿄대 교양학부 강사를 하면서 보고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그에 머물지 않고 대학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어떤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도쿄 대학의 교양 교육 비판을 빙자한 교양 중시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작금의 도쿄대생들이 '교양 바보'라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중학생 수준의 생물학 수준으로 의사를 꿈꾸고, 열역학 법칙도 모르면서 공대에 진학하는 학생이 수두룩하다고 말한다. 단기적으로는 일본의 문부성이 교과 과정을 단순화하고, 쉬운 입시를 추진한 것이 이런 병폐를 불러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세상에 필요한 교양인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즉각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출발한 일본 대학제도에 원인이 있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메이지 정권 이래 이런 정책을 지도하고 독려한 곳이 문부성이었다. 문부성은 대학을 철저하게 통제하며 직업에 필요한 '교양 없는 전문가 바보'를 대량생산하도록 독려했다. 대학은 예산과 인사를 틀어쥐고 있는 문부성의 눈치만 보며 저항 다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정부 방침을 그대로 추수했다. 결과적으로 문부성은 지적 망국의 원흉이 됐고, 대학은 교양 없는 바보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생산 기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 지적 망국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정책을 지휘하는 문부성이 없어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의 대학교육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일지라는 인물은 일본의 교육 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의 대학생은 교실 좌석에 배열되어 있는 '찻잔' 같은 존재이다. 교사는 '주전자'를 이용하여 계속해서 지식을 '찻잔'에 따르는데, 그 찻잔의 용량 따위는 완전히 무시된다"

요컨대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생은 양산되는 '찻잔'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128쪽)

폭넓은 교양 교육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교수가 따라주는 전문 지식만 잔에 채워 나가는 '바보 전문가'가 이렇게 양산된다는 얘기다. 이게 어디 도쿄대만의 일일까? 일본 교육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의 서울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도 마찬가지거나 더 열악하다고 봐야 한다. '무교양, 몰교양의 화신'인 윤석열이 서울대 법과대학에서 어떻게 '배설'됐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구절이다.

요즘 시대를 스페셜리스트의 시대라고 부르면서 제너럴리스트를 무시하는 것이 유행병처럼 퍼져 있지만 정작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제너럴리스트라고, 그는 강조한다. 모든 거대 조직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사람,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 집행 부문의 상층부에 존재하는 기업의 운영자 등은 그가 문과 출신이건 이과 출신이건 모두 제너럴리스트라는 것이다. 스페셜리스트보다 한 차원 높은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 없고, 그런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를 육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교양 교육이라는 얘기다.

그는 교양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도 말한다. 정의하기 어렵지만 추상적으로 표현한다면 '인류 사회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대학은 인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지적 재산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사명을 지닌 공동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지금 일본의 대학은 특수 전문지식은 중시하고 그보다 상위에 있어야 할 교양교육은 경시하고 있다면서, 대학교육에서 교양교육을 바로잡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경고한다. 이것이 대학 문제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일본을 한국으로, 도쿄대를 서울대로 자연스럽게 바꾸어 읽게 되었다. 대학교육, 특히 교양의 경시에 관해서 일본의 대학과 한국의 대학은 쌍생아라고 할 만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 제목을 굳이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고 붙인 것은, 일본에서 그나마 교양교육을 가장 충실하게 하는 도쿄대가 이 지경이니 다른 대학의 사정은 어떠한가를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한국 수재들의 집합소라고 하는 서울대는 어떨지, 그리고 한국 대학의 교양 교육은 과연 안녕한지 의심에 의심의 꼬리가 이어졌다.

제목의 가벼움에 비해 무거운 내용의 책이다. 대학의 문제, 교육의 문제, 교양 교육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 찾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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