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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외교부의 온도는 '35도'

오사카총영사 시절 이야기

by 오태규

인간의 정상 체온은 36.5도다. 그보다 낮아도 높아도 정상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서는 정상체온보다 높으면 식당에도 들어갈 수 없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체온 측정이다. 그만큼 체온 관리는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조직에도 체온이 있다면, 외교부는 몇 도나 될까. 나의 경험으로는, 정상체온보다 한참 낮은 것 같다. 35도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차갑다는 얘기다.


내가 외교부 담당 기자를 할 때부터 수없이 들은 말이, 외국 공관에 파견된 비외교부 출신들이 외교부의 가장 큰 비판자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외국 공관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비외교부 출신 관료들로부터, 해외 공관에 근무하면서 외교부 직원한테 설움과 차별을 당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많다.


외국의 같은 공관에서 몇 년 간 같이 얼굴을 맞대며 근무하면 서로 정이 들 법도 한데, 비외교부 출신자가 공관 근무 이전보다도 더욱 외교부를 싫어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지에서 만난 별난 사람 탓도 있겠지만 그런 사례는 일반화하기 어려우니 일단 제외하자. 그럼, 남는 것은 외교부 조직문화의 문제일 것이다.


짧은 나의 공관장 경험으로 볼 때, 두 가지 정도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근무 특성의 차이다. 외교부 직원, 즉 외교관은 해외근무가 일상적인 일의 하나다. 퇴직 때까지 수 차례 해외근무를 해야 하니까,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무덤덤하게 생각한다. 반면, 비외교부 공무원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공무원 생활 중에 딱 한 번 해외근무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연히 해외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고, 조그만 도움이라도 아쉽다. 이런 근무 패턴의 차이가 상호 오해를 낳는 구조적인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외교부 공무원은 한 번뿐인 해외생활을 하면서 해외생활에 이골이 난 외교관의 도움을 받고 싶은 반면, 외교부 직원들은 그런 것은 나도 그랬듯이 혼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둘째는, 공관 활동의 중심이 외교부니까, 공관 운영이 외교부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그런 과정에서 당연히 비외교부 직원들은 정보나 일상적인 지원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외교부 직원과 비외교부 직원이라는 편 가르기 의식이 자연히 생기고, 끼리끼리 모임도 빈번하다 보면 상호 불신과 적대의식도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개인 사이의 문제는 어쩔 수 없지만 조직에서 나오는 문제는 공관장이 신경을 쓰면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이제까지 보고 들은 경험도 말하면서 같이 근무하는 사람끼리 더욱 유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공관장부터 외교부 직원과 타 부처 출신 직원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업무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힘썼다.


특히,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가 가장 예민한 시기라는 점을 감안해 다른 때보다 착임과 귀임 공관원을 잘 챙기도록 당부했다. '사람의 중요성'을 환기하기 위해 직원회의 때 몇 차례 정현종 시인의 <나그네>를 소개하기도 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 시를 들으면 조금이라도 사람을 중시하는 마음이 생기겠지 기대했다.


하지만 3년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서 겪어보니, 그런 노력이 별무소용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을 중하게 대하지 않는 문화는 공관에만 있는 게 아니라 외교부 본부가 근원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공관장 인사는 일 년에 두 차례로 나눠 실시된다. 이 가운데 임기를 끝내고 귀국하는 비외교관 출신 공관장(특임공관장)은 아무리 많아도 한 손가락에 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인원도 많지 않고 자신들의 큰 우군이 될 수 있는 고급 인재들이니, 외교부 차원에서 초대해 그들의 경험도 듣고 격려도 해 줄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기미조차 없다. 나만 그런 줄 알고 특임 공관장을 하고 들어온 몇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이구동성으로 똑같은 실망감을 토로했다. 심지어 외교부 출신 직원들도 외교부에서 퇴직할 때보다 다른 부처에 파견된 상태에서 퇴직할 때가 더욱 따뜻한 정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사실은 귀국한 지 무려 5개월 반이나 지난 시점에서, 외교부 본부의 모 간부로부터 귀임 환영(?) 식사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귀임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 그런 이유로 지금 만나면 서로 쑥쓰러울 것 같다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런 식으로 외교부는 자신들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차곡차곡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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