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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원 Jun 10. 2018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 마라!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어떤 것을 다했다는 것인가? 최선이라 하면 시간에 충실했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몰입을 했다는 얘기인가? 무엇을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인가? 자신이 아는 한계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것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만큼은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초선을 다했다는 것은 그것을 하기 이전에 더 많은 연구를 하고 더 알아야 한다. 살아가면서 더 빨리 더 많이 알려면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 의식이 갇혀있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들어도 의심만 가득하다. 비난과 의심, 안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하여 새로운 정보가 받아드르기가 어렵게 된다.

내가 책을 쓰겠다고 선포하고 주변에 알릴 때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나 쓰는 것에 대해 축하하거나 기대한다고 하는 사람을 못 봤다. 단지 글쓰기 코치만 축하한다고 얘기해줬다. 내가 원고를 출판사에 판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미친 출판사다 당신의 원고를 공짜로 만들어주냐는 것이다. 원고료는 무시한다. 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런 비용 관점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가까이 있던 사람이 누군가(출판사)의 혜택으로 책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절대 못 믿겠다는 투다. 그렇다 들으려 하지 않으니 꼬투리를 잡고 안 되는 이유를 만들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웃기만 한다. 대 놓고 반대는 하지 못하니 그냥 듣고만 있다. 하겠다는 사람 앞에서 안 되는 이유만을 찾는다. 이것은 최악이다.  성공해보지 못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기억해 낼뿐이다.

그냥 응원해주면 된다. 잘될 거라고 한마디 해주면 된다. 그런데 자신이 못하니 남도 안될 것이라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을 했으니 그 사람이 대단하게 보이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결과는 혹독하다.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끔찍하지 않은가? 결국 노예근성과 성공 근성, 주인 근성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나는 보았다. 내가 책을 쓰겠다고 했을 때 부정적인 시각과 “네가?”라는 의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농담이라 생각하고 말장난으로 치주 한다. 그러다 말겠지 라는 투다. 그걸 하면 내손에 장을 지진다는 사람도 있다. 어쩌랴 그렇게 사라 온 사람들을 어쩔 수는 없다. 할 수 있다고 얘기만 해줘도 차이는 크다. 그렇게 의식의 차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만큼 의식은 중요하다. 그 의식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움츠려 드느냐? 활달하게 거침없이 행동하느냐? 생각이 자유로우냐? 생각이 경직되어 있느냐? 등으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제발 배 아파하지 말고 축하해주자! 기원하고 감사하자! 평생 노예로 살 수는 없지 않으냐? 최선의 생각이 열려있는 때 최선이라 하지 않는다. 최적의 노력이라 해야 한다. 최선은 자신의 생각에서 최선이고, 최적은 나와 상대를 고려해서 아우르는 얘기가 된다.

자신을 돌아보라!

어떤 일이 있을 때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누가 그랬는지 원인만 찾고 타인에게 그 원인을 돌린다. 자기는 죽어도 하지 않은 것이고 무조건 타인이 잘못했다고 따지고 든다. 이것 또한 주인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스스로 하지 못하니 남이 했다고 여긴다. 자기 의지가 약하니 남의 의지가 넢다고 생각한다. 모든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주인이 아니면 타인이 된다. 그들을 조져야 자신이 편하다. 와부에서 잘되어야 자기가 편해진다. 그래서 남 탓을 하고 핑계된다. 자기가 약하니 타인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의지가 약하면 외부 의지에 귀를 기울인다. 무언가 사는데 만족도가 높다. 그 물건이 있어야 자신이 이제 그것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있기에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 그것이 있기에 자신은 이제 할 수 있다. 그것이 있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없다면 그것이 있을 때만 상상하고 그것이 없으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꼭 그것을 찾아야만 할 수 있다. 그것은 자기 의지가 낮은 사람의 행동이다. 그리고 그 물건이 계속 자신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식상해지면 구석에 처박힌다. 그 물건은 구석진 어딘가에 보관된다. 그리고 하고자 했던 의지와 함께 창고로 보내진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구입했기 때문에 그 물건은 창고에 갔을지 모른다. 창고에 간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구입했다거나 구입하게 된다. 스스로 맨손으로, 정신력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식은 그런 것이다. 의식을 높여야 자존감도 높아지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볼 때 자신이 채워진다. 계속 공허하게 자신을 비워두지 말고 자신을 찾아 채워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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